오래 사는 게 좋은 걸까?

 

히스기야 왕은 다윗 왕과 요시야 왕과 더불어 유다 왕국 최고의 성군(聖君) 중 한 명입니다. 히스기야 왕을 뒤이어 그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에 오릅니다. 므낫세가 왕위에 오를 때의 나이가 12살이었습니다. 므낫세 왕은 55년간 남유다 왕국을 다스립니다. 그런데 므낫세에 대한 평가는 역대 왕들 중 최악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아합과 쌍벽을 이루며, 누가 더 악한 왕인가 배틀(battle)을 벌일 정도입니다.

 

자식 농사는 알 수 없는 것 같습니다. 성군 히스기야의 아들이라면 아버지를 반만이라도 닮았으면 좋았을 뻔했는데,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는 최고의 악한 왕으로 평가를 받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를 보면 어리둥절해집니다. 자식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 것인지, 미궁에 빠지는 듯합니다. 정말 겸손하게 주님께 맡기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특별히 잠언 1장 7절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 (The fear of the Lord is the beginning of knowledge).

 

우리 시대는 이것을 가르쳐 주는 곳이 없습니다. 학교 교육은 온통 ‘지식’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 지식의 ‘시작’(beginning)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려주지 않습니다. 고린도후서에서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고전 13:1-3).

 

이런 저런 비상한 일을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아무리 큰 지식을 가지고 이런 저런 훌륭한 일을 해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고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이것은 역사가 가르쳐 준 교훈이기도 합니다. 찬란했던 계몽주의의 끝이 처참한 전쟁(1,2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교훈 앞에서 사람들은 경악했고, 홀로코스트 유대인 대학살 사건은 ‘인간의 조건’을 되돌아보게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이 없는 인간의 지식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저지르는 데까지 이를 수 있는지, 인류는 역사에서 확인했습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서 저질러지는 악한 일들은 모두 ‘알파와 오메가(처음과 끝)’이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발생합니다. 지식의 시작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므낫세에게는 이러한 지식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므낫세 왕의 행위를 서술하고 있는 성경의 이야기를 보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 없음’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래서 므낫세 왕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한 것 외에도 또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립니다. 이런 므낫세 왕의 행위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오래 사는 게 좋은 걸까?”

 

므낫세가 왕에 즉위할 때 나이가 12세였습니다. 계산을 해보면, 므낫세 왕은 히스기야가 생명을 15년 연장 받았을 때 낳은 아들입니다. 히스기야가 15년 생명 연장을 받지 않았다면 므낫세는 태어나지 않았을 겁니다. 므낫세는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사람처럼 보입니다. 마태복음에 보면, 예수님은 당신을 판 가룟 유다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아니하였더라면 제게 좋을 뻔하였으니라”(마 26:24).

 

인류 역사에 보면 태어나지 않았다면 자기 자신에게 좋을 뻔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현대 세계사에서는 ‘이디 아민’ 우간다 독재가가 그런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이 사람은 집권 8년간 50만명을 학살했습니다. 경제를 심하게 망쳐 우간다를 파탄으로 몰고 갔습니다. 7-80년대 세계인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던 이 독재자는 ‘검은 히틀러’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캄보디아의 독재자 ‘폴 포트’도 태어나지 않았다면 자기 자신에게 좋을 뻔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집권하는 동안 130만명에 이르는 캄보디아 국민을 학살했습니다. 킬링필드라고 불립니다. 폴 포트는 “국가 발전을 가로막는 자들은 모두 죽여야 한다”는 일념을 가지고 학살을 시행합니다. 인류 역사의 비극입니다.

 

므낫세는 자그마치 55년 동안 통치를 합니다. 남,북 왕조 통틀어서 가장 오랜 기간 통치한 왕입니다. 오래 통치한 것 때문에 나라가 더 망가집니다. 므낫세 왕은 아버지 왕과는 달리 친앗수르 정책을 폅니다. 남쪽 네게브 지역을 개간해 농지를 확장하고, 앗수르의 비호 아래 주변국들과 무역량을 증대시켜 경제적 안정을 추구합니다. 이는 장기간 통치의 기반이 됩니다.

 

오래 사는 게 좋을 걸까? 므낫세 왕을 보면 이런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히스기야가 15년 더 생명연장을 받지 못했다면 므낫세 왕은 태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므낫세가 55년간 장기 통치를 하지 못하고 일찍 죽었더라면 남유다가 그렇게 허망하게 바벨론에게 멸망당하지 않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오래 사는 일은 좋지 못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래 사는 게 좋은 걸까’를 묻게 만드는 인생을 사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오래 사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어떤 사람에게 오래 사는 것은 슬픈 질문을 유발하기도 합니다. 므낫세처럼 말이죠.

 

므낫세 이야기는 반면교사 삼아야 합니다. 잘 살아야 겠구나, 다짐하게 됩니다. ‘오래 사는 게 좋은 걸까?’라는 질문이 아니라, ‘오래오래 살아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감사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인생을 살아야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무엇보다, ‘오래오래 함께 해 주세요’라는 말이 나오는 인생을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 ‘오래오래 함께 해 주세요’라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인생을 보람차고 의미있고 복되게 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서로가 서로에게 ‘오래오래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되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