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기야에게 배우는 기도의 지평

 

히스기야(Hezekiah)는 고대 남유다 왕국의 13대 왕이었습니다. 그는 25세에 왕에 즉위하여 29년간 통치하였습니다. 그가 통치하던 시대는 국제정세가 순탄치 못했습니다. 앗수르라는 거대 제국이 패권을 차지하고 있던 시절이었는데, 그의 재위 얼마 전 북이스라엘이 앗수르에게 멸망 당하는 일도 있었습니다. 앗수르의 위세는 꺾이지 않았고, 제국 주변의 약소국들은 힘을 합해 어떻게든 제국의 위협으로부터 각자 나라를 보호해 보려고 했습니다.

 

예로부터 다음의 세 가지는 인간의 삶을 망가뜨리는 주요 요인으로 작용했습니다. 전쟁, 기근, 전염병. 인류의 문명은 이 세 가지를 해결하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요즘 용어로 바꾸면, 안보, 경제, 그리고 보건입니다. 고대 사회에서 안보 문제는 오늘날보다 매우 노골적이었습니다. 제국은 약소국들에게 노골적으로 조공을 요구했고, 이에 응하지 않는 나라가 있으면 제국은 군대를 이끌고 가서 위협했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처음에 친앗수르 정책을 펴며 앗수르 제국에 조공을 바쳤으나 앗수르의 횡포가 나날히 늘어나면서 반앗수르 봉기에 가담을 합니다. 그 일 때문에 결국 남유다는 앗수르의 침공을 받습니다.

 

제국의 침략 전쟁. 국가적 위기 앞에서 히스기야는 기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히스기야에게 기도행위는 단순히 무릎 꿇고 골방에서 기도하는 게 아니라 신앙 공동체 안에서 위기를 적극적으로 해결하려고 하는 신앙의 일이었습니다. 다행스럽게 히스기야 왕 때 이사야라고 하는 걸출한 선지자가 있어 히스기야를 도왔습니다. 앗수르에게 대항하고 싶지만 그럴만한 힘이 없는 남유다를 향해 이사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합니다. 국가적 위기 앞에서 온 힘을 다해 기도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하나님께서 들으셨다는 전언이었습니다. “여호와의 열심이 이루실 것이다!”(왕하 19:31).

 

히스기야는 골방에서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는 반앗수르 봉기에 동참하여 앗수르 제국의 침략을 대비하며 예루살렘 성을 정비합니다. 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 바깥에 있었던 기혼샘에서 물을 끌어옵니다. 수로를 만들고 그 물을 저장할 연못을 만듭니다. 그것이 실로암 연못입니다.  또한 히스기야는 성벽을 중수하고, 식량을 비축하고, 군사력을 증강시킵니다. 그리고 흩어져 있던 권력들을 모아 중앙집권화시키는데 성공합니다. 그러면서 연안국들과의 동맹을 강화합니다. 이렇게 히스기야는 기도하면서 실제적인 방어 계획을 세웁니다. 이러한 준비는 앗수르의 침공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이 함락되지 않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히스기야는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정말 많은 일을 합니다. 이 일을 행하는데 있어 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기도였습니다. 히스기야는 기도하면서 일을 한 대표적인 성경의 인물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전해집니다.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왕하 20:1). 제국의 압박으로 인하여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인 상황에서 히스기야의 죽음 예고는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히스기야는 낯을 벽으로 향하고 통곡하며 기도합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는 매우 특이했습니다. 보통 우리는 어려운 일을 당하면 회개를 하면서 기도하는 데 반해, 히스기야의 기도는 회개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와여 구하오니 내가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께서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왕하 20:3).

 

하나님은 이러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듣고 그의 병을 고쳐주시고 생명을 15년 연장시켜 주실 뿐만 아니라 앗수르의 위협으로부터 구원해 주시겠다는 약속도 해주십니다. 히스기야의 기도는 기도의 지평을 넓혀 줍니다. 회개는 아주 중요한 것이지만, 지난 날, 살아오면서 나의 삶을 위하여, 가정을 위하여, 교회를 위하여, 나라를 위하여 수고한 것들도 하나님의 은혜를 간구할 수 있는 중요한 토대가 된다는 것입니다. 살면서 잘못했던 것만 기억하지 마세요. 살면서 수고했던 것들을 기억해 보세요. 돌아보면, 우리는 참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히스기야처럼, 때로는 그 수고에 기대어 기도해 보세요. 수고의 흔적은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정말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구원의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니, 열심히 수고한 나 자신을 스스로 칭찬하면서, 수고하면서 사는 일을 너무 힘들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수고를 헛되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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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