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

 

다르게 살 용기.

 

체제가 제시하는 방향을 따라 가지 않으면 도태되고 소외 될까봐 불안에 빠져 전전긍긍하게 만들어 스스로 노예의지를 발휘하도록 만드는 이 시대에,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나의 삶/구원을 주님께 맡기고, 다르게 살아갈 용기를 갖는 것,

그것이 바로 거룩이다.

 

거룩을 도덕으로 이해하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니체가 간파하고 있듯이 도덕은 체제가 부과한 노예의지이다. 도덕은 필연적으로 차별을 만들고, 배제와 소외를 불러와, 서로 미워하게 만들어 사회를 분열시킨다. 거룩을 도덕적 요청으로 받아들여 자기를 다른 이와 구별하려드는 순간 그 사람은 자기 모순에 빠지고 말 것이다.

 

거룩(카도쉬)은 다르게 살 용기다. 거룩은 오히려 차별을 만드는 체제에 저항하여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을 발산하며 '너와 나'의 화해를 이끌어 평화를 일구어 낸다.

 

예수 그리스도가 거룩하신 분인 이유는 다르게 살 용기를 가지는 게 무엇인지를 십자가에서 보여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거룩은 온 세상을 화해로 이끌었다/이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우리에게 다르게 살 용기를 요청한다. 거룩은 도덕이 아니다. 거룩은 무조건적인 사랑이다.

 

나는 저항한다. 고로 거룩하다.

 

다르게 살 용기가 절실히 필요한 시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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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