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트러블 메이커인가?]

보편성과 역사성이라는 두 기둥을 잡고 신학을 했던 판넨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섬기는 하나님, 예수가 믿는 하나님이 유일하고도 참된 하나님일 때, 바로 그때라야만 유대인이 아닌 사람도 하나님을 믿어야 할 충분한 이유가 생길 것입니다."
(조직신학 서론, 10쪽)

구약성경 설교를 많이 하는 저로서는 요즘 여간 괴로운 게 아닙니다. 유대인의 성경, 유대인의 하나님이 믿음의 보편 대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일이 여간 어려운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국가는 현재 유대교 또는 여호와 하나님 신앙과는 별개로 존재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을 성경과 분리시켜 생각하는 일은 어렵습니다. 1948년에 이스라엘이라는 국가가 세워진 것도 성경에 근거한 시오니스트의 활동 때문이니까요.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의 전쟁과 그들이 빚어내는 참상을 보면서 성경에 등장하는 온갖 '탄원'들이 팝콘처럼 떠오릅니다. 주변 나라들로부터 엄청난 시련을 당하며 실존적 탄원을 그치지 않았던 이스라엘과 그 탄원이 고스란히 담긴 성경을 보면서,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참상은 어떤 탄원으로 치유될 수 있을 지, 도무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은 보편성을 가집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믿음입니다. 이 보편성을 역사 속에서 확보하려면 현재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전쟁의 참상을 모른 척할 수 없습니다. 역사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은 그리스도인의 책임입니다. 

약속의 땅, 팔레스타인(가나안)을 둘러싼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은 십자가 고난의 현재적 역사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죄성이 발현되는 자리이고, 하나님의 은총이 필요한 탄원의 자리입니다. 둘(유대인과 이방인/의인과 죄인)이 하나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막힌 담을 허무신 그리스도께서 여전히 십자가에 달려 계신 자리이기도 합니다.

성경이 트러블 메이커가 아니라, 하나님의 현실성이라면,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분명해집니다. 평화와 자유가 입맞출 때까지 우리는 쉴 수 없습니다. 십자가에 달린 하나님께서 그만 십자가에서 내려오실 수 있는 날이 올까요? 올 것입니다. 그때까지 죄악과 폭력에 굴하지 말고, 희망 안에서 잘 버텨야 할 것입니다. 함께.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