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철학]

 

좋은 문학은 '비극'이다. 좋은 철학은 '아픈 철학'이다. 좋은 문학은 비극을 보듬어 안아 희망으로 이끌어 준다. 좋은 철학은 아픈 마음을 안아 희망으로 이끌어 준다.

 

좋은 문학을 하고 좋은 철학을 하는 사람들의 인생을 들여다 보면, 대개 개인적으로든 역사적으로든 비극과 아픔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자신의 삶을 파국 또는 비극으로 몰고온 일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고 가만히 들여다 보며, 왜 이러한 파국과 비극이 닥쳤는지를 파헤친다. 그리고 마침내 그 원인을 발견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새로운 삶의 토대를 제공한다.

 

일례로, 요한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Homo ludens/놀이하는 인간>는 아픔이 담긴 철학이다. 나치 수용소에서의 끔찍한 노동의 경험이 그를 '놀이하는 인간'으로의 사유로 이끌었다. 나치 포로수용소의 모토는 "노동이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였다. 노동하느라 죽다 살아난 하위징아는 노동과 대비되는 '놀이'에 주목하여, 인간은 '호모 파베르Homo faber/노동하는 인간'이 아니라 '놀이하는 인간'이어야 한다는 새로운 삶의 토대를 제공하여 노동으로 인하여 고통당하는 인간을 해방시키고자 하였다. 이렇게 하위징아의 <호모 루덴스>는 아픈 철학이다. 그의 철학에는 아픔이 배어있다. 

 

아픔을 일부러 경험할 필요는 없지만, 그렇다고 우리는 살면서 아픔을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아픔이 길이 되려면' 우리는 아픔을 그냥 무의미하게 지나쳐서는 안 된다. 모든 '좋은 것'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아픔이 낳은 창조물이다.

 

아픈 철학이 좋다. 그가 왜 그런 철학을 하는 지, 인생의 뒤안길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의 아픔이 어떻게 새로운 길을 내고 있는지 세심하게 살피면 좋다. 그렇게 우리는 아픔을 이겨내기도 하고, 아픈 철학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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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