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조찬기도회를 폐지하라]

 

"자유주의적 자본주의는 인격을 생산의 수단으로 삼음으로써 인격을 비인간화한다. " (라쿠나, <우리를 위한 하나님>, 398쪽>

 

우리 사회를 '자유 민주주의 사회'라 한다. 그 바탕에는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깔려 있다. 이 체제의 악마성은 '인격을 생산 수단'으로 전락시킨다는 데 있다. 인격이 생산 수단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인격으로서의 대우는 증발되고 만다.

 

우리 사회에서 인간 인격이 외롭고 지치고 탈진하는 이유는 인격이 '생산 수단'으로 전락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한 인격으로 존귀하게 대우를 받지 못하고 '생산 수단'으로 전락했으니 당연한 결과이다. 한나 아렌트의 용어를 통해서 표현하면, 우리 사회의 인간 인격은 '정치적 삶'이 박탈당한 것이나 다름 없다. 나치가 유대인들에게서 '정치적 삶'을 박탈한 뒤 저지른 참사가 일상생활에서 발생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체제는 이러한 상황을 더 심화시켰다. 1997년 IMF 사태 이후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의 지위는 말도 못하게 약화되었다.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노동자는 '현대판 노예'라 부를 만한다.

 

이러한 상황에 대한 정치철학적 이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자유민주주의를 지켜나가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것"이라는 발언은 예수님을 해방자(liberator)가 아니라 억압자(oppressor)로 둔갑시키는 일이다.

 

아무데나 '기도회'를 갖다 붙인다고 그것이 거룩한 시간이 되거나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시간이 되지 않는다. 아무데나 '예수님'을 갖다 붙인다고 그것이 거룩한 개념이 되거나 정당화되지 않는다. 아무데나 '기도회' 그리고 '예수님'을 갖다 붙이는 행위는 자신의 무지와 몽매를 드러낼 뿐이다. (내가 무지몽매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일 수도 있겠다. 그렇다면 가르쳐 주시라.)

 

국가는 인간 인격의 '정치적 삶'을 보장하고 보호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교회는 국가가 그 역할을 잘 하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그러나 국가가 국민으로부터 '정치적 삶'을 빼앗고 있고, 교회가 그것을 묵인할 뿐만 아니라 조력하고 있다면, 국가와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그 반대를 말하고 있는 국가조찬기도회의 존재 이유는 묘연할 뿐이다. 이럴거면, 국가조찬기도회는 폐지되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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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