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사성어와 신앙2012. 8. 29. 07:24

유능제강(柔能制剛): 부드러운 것이 능히 강하고 굳센 것을 누른다 / 어떤 상황에 대처할 강한 힘으로 억누르는 것이 이기는 같지만 부드러움으로 대응하는 것에 당할 수는 없다는

 

노자의 도덕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사람은 생명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는 부드럽고 약하지만 죽음을 당하게 되면 굳고 단단해진다. 풀과 나무도 살아있을 때는 부드럽고 연하지만 죽게 되면 마르고 굳어진다. 그러므로 굳고 강한 것은 죽음의 무리이고 부드럽고 약한 것은 생명의 무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군대가 강하게 되면 멸망하고 나무가 강해지면 꺾이게 된다. 강하고 큰 것은 아래에 자리하게 되고 부드럽고 약한 것이 위에 자리를 잡는다.” “이 세상에서 물보다 더 부드럽고 약한 것은 없다. 그렇지만 굳고 강한 것을 치는 데 물보다 나은 것은 없다. 물의 역할을 대신할 만한 것은 없는 것이다. 약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 부드러운 것이 굳센 것을 이긴다는 것은 세상 사람 모두가 알건만 그 이치를 실행하는 사람은 없다.” - 노자 도덕경 -

 

인간은 언제나 강한 것을 원합니다. 강한 나라가 지배하고 강한 사람이 지배합니다. 그래서 나라는 군사력을 키우고, 한 개인은 권력을 키웁니다. 노자의 통찰력에 의하면 이것은 인간의 존재가 그만큼 죽음에 기울어 있다는 뜻입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죄성이라고 합니다. 죄성은 곧 죽음에 기운 존재를 의미합니다. 그래서 죄성에 기운 인간이 하는 모든 일은 결국 죽음의 냄새 밖에는 내지를 못합니다. 그리고 인간은 결국 그 죽음을 당합니다.

 

이러한 상황을 극복해 보려고 인간은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왔습니다. 그 중 하나가 교육의 발전입니다. 교육을 통해서 인간의 존재가 나아지리라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지요. 물론 굉장히 획기적인 생각임에 틀림없습니다. 실제로 교육을 통해서 인간 존재가 나아지는 듯 보이기도 합니다. 그 기대가 하늘을 찌르던 시대가 르네상스 이후입니다. 모든 것을 인간의 이성의 힘으로 조절하고 계량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희망을 송두리째 뽑아버리는 사건이 발발했습니다. 바로 세계 1차 대전입니다. 인간의 이성은 결국 서로 죽이고 죽는 전쟁으로 치달았습니다. 그야말로 절망이고 패망이었습니다. 결국 인간의 존재는 죽음에 기운 존재라는 것이 다시 한 번 확인되었을 뿐입니다.

 

이것은 한 예에 불과합니다. 죄성에 기운, 죽음에 기운 인간의 존재를 인간 스스로 어찌할 수 없는 노릇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인간에게 구원에 대한 메시지를 선포합니다. 절대자인 하나님 없이 인간 스스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고 선포합니다. 구원은 인간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라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은 구원을 베풀고, 인간은 그 구원을 갈망하는 존재라고 선포합니다. 그래서 구원은 은혜라고 선포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그 구원의 은혜의 선포자입니다. 성육신 하신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는 구원의 은혜를 선포했습니다. 그의 선포가 구원으로 유효한 까닭은 그가 바로 구원의 주체이신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구원자로 선포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의 구원 선포가 유효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은 구원의 주체가 아니라 구원의 수혜자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구원 받아야 할 사람이 구원을 선포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구원의 주체만이 구원을 선포할 때 그 구원은 믿을 수 있고 확실한 것이 됩니다.

 

신앙은 이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선포한 구원이 참 진리이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하신다! 왜냐하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죽음으로 기울어진 우리의 전 존재를 걸 때 우리에게는 새로운 희망이 솟아납니다. 그럴 때 우리는 비로소 지배욕에서 벗어나 예수 그리스도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내 목숨을 내놓을 수 있는 부드러운 삶을 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처럼 힘없이 끌려가 십자가 위에서 조용히 처형당하셨습니다. 참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부드러우시고 약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분이 참 생명이라는 것을 증명합니다. 얼마나 놀랍습니까? 이 예수 그리스도를 어떻게 구원자로 믿지 않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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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