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심삼일(作心三日)
우리는 이 말을 부정적인 의미에서 사용한다. ‘마음 먹은 게 삼 일도 안 돼서 꺾인다’는 뜻으로 말이다. 여기에는 기본적으로 인간의 의지가 그만큼 나약하다는 부정직인 인식을 담겨 있다. 어떤 면에서는 맞는 말이다. 인간의 의지는 박약하고 게으르고 초라할 때가 많다. 3일만 지나도 우리는 기억을 잊은 듯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그런데, 어느 날, ‘작심삼일’이 다른 뜻으로 다가왔다. 왜 우리는 마음 먹은 것을 3일도 지속시키지 못할까? 그것이 온전히 인간의 의지 박약 탓일까? 인생을 살아보니, 그런 것 같지 않다. 우리는 굳게 결심하여 그것을 실행하려고 하나 인생의 굴곡이 그것을 지키지 못하도록 막는다. 인생은 하루가 멀다하고 변화무쌍하다. 오늘의 결심을 내일까지 이어갈 수 있는 안정성이 우리 인생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혹시 작심한 것을 3일 이상 지속시킬 수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의지가 대단하기 때문이라기 보다, 그냥 은혜다.
또, ‘작심삼일’이 이렇게도 다가왔다. ‘작심하고 3일만 하면 무엇이든지 이룰 수 있다.’ 경험상, 무엇이든지 3일을 넘기는 것은 좋지 못하다. 일례로 들어, 한 권의 책을 읽는 데, 3일 이상 쓰는 것은 좋지 못하다. 3일이 넘어가면 흥미도 떨어지고 기억력도 흐려져 읽은 내용이 전혀 기억도 나지 않을 뿐더러 빨리 읽기를 끝내야 한다는 부담감만 마음에 쌓인다. 그래서 나는 되도록이면 책을 읽으면, 3일 이내에 끝내려고 한다. 이것을 실패하면, 뿌듯함 보다는 죄책감이 몰려온다.
인간에게 3이라는 숫자는 대단히 신비스러운 듯싶다. 동양사상에서도 3은 완전수이고, 기독교에서도 3은 완전수이다. 뇌과학에서도 3은 인간이 무엇인가를 기억하는 데 최소의 수로 생각한다. 세 번은 봐야 머릿속에 박힌다는 뜻이다. 무엇이든지 3일 정도는 지나봐야 그 일의 모양을 파악할 수 있다. 그래서 중요한 결정을 할 때도 3일 동안 생각하며 천천히 결정하는 게 지혜다.
인생은 너무 변화무쌍하다. 아무리 굳은 의지를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지켜낼 수 없는 불가항력적인 일이 다반사 일어난다. 마음 먹는 것 자체도 힘들지만, 마음 먹은 것을 지켜내는 일은 더 힘들다. 그래서 혹시 마음 먹은 것을 지켜냈다 하더라도 그것은 나의 의지의 대단함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의지가 지켜질 수 있도록 돌보아준 어떠한 힘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기독교인은 그 힘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한다.
작심삼일. 작심하고 3일(또는 세 번)만 해보자. 그리고, 그 작심이 3일 동안 지속되도록 은혜를 간구해 보자. 3일 뒤에(또는 3번 뒤에), 우리의 삶은 상상하지 못했던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겨우 3일, 또는 겨우 세 번인 것 같지만, 그 3일, 또는 그 세 번이 인생을 바꾼다. 참을 인(忍) 세 번이면(세 번만 참으면) 살인도 면할 수 있다 하지 않았는가.
'파루시아를 살다(신학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두 증인 이야기 (0) | 2019.02.20 |
---|---|
소확행과 작은교회 운동 (0) | 2019.02.05 |
교회 없는 세상이라니, 아무 신비도 없어 (1) | 2019.01.22 |
춘원 이광수, 가장 잘한 일 (0) | 2019.01.10 |
별을 본 사람은 길을 떠난다 (0) | 2019.01.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