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없는 세상이라니, 아무 신비도 없어
인간이여, 너희들은 보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이마 아래 선명한 두 개의 불순물
눈동자라 불리는 작고 동그란 요물단지로
너희들은 너무 먼 곳의 빛과 어둠을 보았고
그것들을 전부 이곳에 데려왔다 그리하여
이 고귀한 땅은 미래라는 원숭이들의 난장판으로 전락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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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꽃의 독에 탐닉하여
일생의 복을 탕진한 자여
극장 없는 세상이라니
아무 신비도 없어
아무 신비도 없어
.
.
이곳은 한때 극장이 있었지요
사람들은 행복했지요
사람들은 언덕 너머에 사는 원숭이 떼 같은
미래 따위는 개의치 않았지요
극장은 생로병사와 희로애락이 천변만화하는 동시에 적재적소에 정돈되는
신비로운 곳이었지요
ㅡ 심보선, '극장의 추억' in 시집 <오늘은 잘 모르겠어>
내가 사는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는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이 즐비하다. 우리 집에서 다리 건너 10분만 가면 '페이스북' 본사가 있고, 그 밑으로 내려가면 '구글' 본사가 있고, 그 밑에 내려 가면 '애플' 본사가 있다. 우리 교회 옆에는 '테슬라자동차' 본사가 있다. 다니는 곳곳마다 우리가 현재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IT 관련 제품의 선도 회사의 본사가 즐비하다.
그런데, 미국의 다른 지역에 비해 '교회'를 찾기가 쉽지 않다. 실리콘밸리 지역에서 집 구하는 것과 교회 건물 구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 중의 하나이다. 미래 산업이 발달하고 전세계에서 IT 관련 종사자들이 몰려오고, 땅값이 오르고 집값이 오르자, 기존에 있던 사람들은 바깥으로 내몰리고, 그때문에 기존의 교회 부지들은 모두 개발업자에게 팔려 집과 회사건물을 짓는데 사용되었다.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에 취직하기 위하여 미래를 꿈꾸며 몰려온 사람들 때문에 그야말로 '이땅은 미래라는 원숭이들의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이곳에서 종교는 그들이 꿈꾸는 미래를 가로막는 불순물에 불과하다. '요즘도 교회 다니는 사람이 있어?'가 상식적인 언어이다. 그래서 이곳의 지형도는 일요일에 교회 가는 인구가 5%도 안 된다.
이곳에서 살면 살수록 느껴지는 풍경은 사람들이 '여름꽃에 탐닉하여 일생의 복을 탕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지역에서 오래 살며 이 지역의 변하는 풍경을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은 어느 특정 지역을 지날 때마다 그곳에 있었던 교회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지금은 모두 집이 들어서 있고, 회사부지로 바뀌어 있다.
'교회 없는 세상이라니, 아무 신비도 없어, 아무 신비도 없어'라는 탄식이 절로 나온다. 미래를 선도한다는 이곳의 기업들은 미래를 준비한다고 하지만, 얼마나 지독하게 미래를 걱정하며 사는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이곳의 하늘은 온통 한 숨으로 뿌옇다.
'이곳은 한 때 교회가 있었지요. 사람들은 행복했지요. 그때는 미래 따위에 개의치 않았어요.' 교회가 없어진 땅, 미래가 들어왔지만, 그들이 말하는 미래는 도대체 무슨 미래인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사람들은 불안하기만 하다.
교회를 잃어버린다는 것은 신비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신비는 불안이 아니라, 기대이고 희망이다. 미래는 희망이어야지, 불안이면 안 된다. 미래를 선도하는 기업들은 '여름꽃에 탐닉하여 일생의 복을 잃어버리게 만드는' 마술과 같다.
그나마 얼마 안 남은 교회부지도 '탐닉'에 위협당하고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싸움은 지독한 영적인 싸움이면서, 동시에 지독히 현실적인 싸움이다. 땅이 없으면 신비도 없다. 땅이 미래다. 땅을 빼앗긴 교회는 미래도 신비도 다 빼앗기는 것이다. 그래서 이곳, 실리콘밸리의 영적 싸움은 땅을 지키는 싸움이다. 여호수아와 갈렙의 부활이 요구되는 곳이다. "이 산지를 내게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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