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통성을 지키려다 잃어버린 것
“여러분 모두는 진리에 따라 살아갑니다. 어떠한 이단도 여러분 가운데 머물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더 이상 누구의 말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진실되게 말하는 이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입니다.” 이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교부 이그나티우스의 칭찬이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에베소 교회를 향한 주님의 칭찬도 이와 다르지 않다. 에베소 교회는 정통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수고를 아끼지 않았고 인내를 가지고 교회를 세우고 지켰다. 에베소 교회는 그리스도께 과분한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에베소 교회는 우리가 신앙 공동체로서 직면할 수 있는 딜레마를 잘 보여준다. 에베소 교회는 정통 신앙을 지키기 위해 악한 자들과 거짓 사도들에 맞서 싸웠고, 이로 인해 그리스도의 칭찬을 받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것을 놓쳤다. 그것은 바로 동료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었다. 신앙의 정통성을 지키려는 그들의 열정이 오히려 공동체 내 사랑의 유대를 약화시키고, 서로를 불신하며 배타적인 마음을 키우는 결과를 초래했던 것이다.
오늘날의 교회도 다르지 않다. 교회는 세속적 가치와 맞서기 위해 정통 신앙을 강조하지만, 때로는 그 열정이 사회적 약자들을 외면하거나 배제하는 태도로 나타난다. 특정한 도덕적 기준이나 신앙적 규범을 앞세워 사람들을 판단하고 정죄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는 복음의 본성에서 멀어진 행위이다. 복음은 궁극적으로 사랑과 자비의 메시지이며, 인간이 가진 약함과 불완전함을 품으라는 초대이다. 복음은 밀어내는 행위가 아니라 끌어안는 행위이다.
에베소 교회에 주신 그리스도의 책망은 여러가지 사회적 문제(이슈)에 직면한 오늘날의 교회에도 유효하다. “너는 네가 처음에 가졌던 사랑을 버렸다”는 말씀은 정통 신앙만을 강조하며 사랑을 잃어버린 우리를 향한 경고이다. 신앙의 열정이 이웃 사랑을 희생시키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웃 사랑은 단순히 좋은 감정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행동과 태도로 표현되어야 한다.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그들의 약함과 필요를 이해하고, 사회적 편견과 혐오를 넘어서 그들을 품는 용기를 가질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셨다. 이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신앙의 본성이다. 우리의 믿음이 진정성 있는 사랑으로 나타나지 않는다면, 우리는 촛대를 잃어버릴 위험에 처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회개하지 않고 이웃 사랑의 따뜻한 마음을 회복하지 않으면 교회 문을 닫아버리겠다고 말씀하신다. 에베소 교회를 향해 교회가 사회적 약자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돌보지 않는다면, 과연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에베소 교회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단순한 역사가 아니라 생생한 도전입니다. 정통성을 지키는 일이 중요한 만큼, 파격적인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것도 중요하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부름 받은 이유이며, 교회의 존재 목적이다. 이웃 사랑의 실천은 교회를 새롭게 하고,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다하게 한다. 오늘 우리의 선택이 교회의 미래를 결정한다. 에베소 교회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고, 사랑을 회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들의 교회에 온기(따뜻한 마음)가 가득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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