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헤이스의 전향에 대한 한마디 논평]

1. 유승원 목사가 리처드 헤이스의 전향에 대하여 '유감'이라며 쓴 글이 이슈가 된 듯하다. 

2. 리처드 헤이스의 전향(헤이스의 용어로는 '회개')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한 유승원 목사의 입장에 대하여 나는 도리어 '유감'을 표명하고 싶다. 

3. 보수적인 한인 장로교회에서 목회를 하시면서 '감'을 잃으셨나, 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다. 

4. 리처드 헤이스가 성소수자들에게 사과한 이유는 리처드 헤이스의 성경 주석이 성소수자들을 공격하는데 근거로 쓰였기 때문이다. 알프레드 노벨이 '노벨상'을 만든 데에는 자신의 다이너마이트 발명이 선하게 쓰이지 못하고 사람을 죽이는데 쓰이는 것에 대한 '회개'의 마음이 담겨 있다.  리처드 헤이스의 전향에 대한 유승원 목사의 '유감' 표명은 한국의 보수 교회에 그렇게 쓰일 것이다. 성소수자들을 공격하는데 근거로 쓰일 것이다. '거 봐라, E. P. 샌더스와 리처드 헤이스의 제자인 유승원 목사도 동성애를 반대한다!' 

5. 유승원 목사는 리처드 헤이스의 전향에 대한 근거로 감리교 신학(사변형)을 들고 있다. 유승원 목사 본인이 나사렛 교단 출신이고, 그곳의 교수를 지냈는데, 감리교 신학의 사변형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모를 리 없을 것이다. 나사렛 교단도 웨슬리언이기 때문이다.

6. 성경, 전통, 이성, 경험, 이 네 가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분별하는, 그리고 세상을 이해하는 도구이다. 어떤 것이 다른 것에 대하여 우위를 점하지 않는다. 

7. 보수 신학이 계속 난항을 겪는 이유는 성경의 절대적 우위를 주장하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보수 기독교 신앙이 자꾸 세상과 충돌을 일으키고, 발목을 잡고, 뒤처지는 이유는 성경을 고착된 '이데아'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8. 그런데, 좀 솔직해지면 좋겠다. 성경은 하늘에 뚝 떨어진 하나님 말씀 자체가 아니지 않는가? 역사 속에서 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이 이성의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한 것이 아닌가? 하나님과 성경을 성부와 성자의 동일본질을 말하는 것처럼 주장하는 것은 비이성적 행위가 아닌가?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컨텍스트 안에서 '해석'의 작업을 반드시 필요로 한다. 

9. 내 눈에는 동성애 문제를 성경에 근거하여 확정적으로 보는 것은 창세기에 근거해서 창조의 문제를 확정적으로 보면서 현대 과학의 발견을 배척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보인다. 

10. 성경에서 동성애에 대한 평가는 이방인, 노예, 여성의 문제처럼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이 없다는 진술은 매우 폭력적이다. '성경의 여러 군데에서 동성애는 '죄'라는 목소리를 내니까, 동성애는 죄가 맞다, 그러므로 동성애는 허용되지 않는다.'라는 말은 성경을 폭력의 도구로 사용하는 일이다.  게다가 미국은 한국의 상황과 달리 동성애를 법으로 보호하는 사회이다. 

11. 성경에서 몇 군데 언급되고 있는 동성애 관련 구절을 들어 현대 사회의 동성애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전형적인 침소봉대이다. 만약 성경 시대에 동성애 문제가 현대 사회처럼 주목 받는 문제였다면 성경은 다르게 기록되었을 것이다. 성경이 그 당시 사회적 약자들(이방인, 노예, 고아, 과부)을 따스하게 품었던 것처럼 그렇게 따스하게 품었을 것이다. 

12. 성경은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국가 폭력에 대한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국가 폭력은 인류에게 가장 큰 과제이다. 국가 폭력이 발생하는 것에 대해서는 광화문에 100만명 모아 놓고 한 마디도 성토하지 않으면서, 성경에서 거의 포착되지도 않는 동성애 문제를 가지고서는 광화문에 100만명 모아 놓고 성토하는 집단이 정말 성경을 공경하는 정상적인 집단인가. 

13. 리처드 헤이스의 '회개'를 배워 목회 현장에서 싸워볼 의지 없이 그냥 '유감'을 표명하는 일, 그것도 매우 수사적으로 유감을 표명하는 일이 좀 유감스럽다. 

14. 한국교회가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분명한데, 난데없이 동성애 이슈를 말하는 것도 불편하다. 약자는 좀 내버려두고, 국가와 헌법을 유린하는 사악하고 힘센 세력과 치열하게 싸우는 데 힘을 모으면 좋겠다.

 

(2025년 2월 21일에 쓴 글을 늦게 올림)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