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은 시이며, 기도문입니다. 시편에서 가장 많이 발견되는 언어는 탄식의 언어입니다. “탄식이라는 말을 국어사전은 이렇게 정의합니다. “한탄하여 한숨을 쉼. 또는 그 한숨”. 그리고 국어사전이 제시하는 예문은 이렇습니다. “그는 밤이 너무나 긴 것을 탄식하며 어서 날이 밝기를 기다리었다.” “그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느냐고 탄식했다.”

 

성경은 성령께서 임하시면 탄식하는 마음이 생긴다고 합니다( 8:26). 그것이 성령께서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시는 방법이라고 합니다. 연약한 우리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한숨 쉽니다. 하지만 성령께서는 바로 그 탄식을 통해서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지, 그 이유를 안다면 우리는 더 이상 탄식하지 않아도 됩니다. 기뻐하거나, 감사하거나, 둘 다 하거나 하면 됩니다.

 

탄식하지 않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살아 있는 자가 어찌 탄식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기도할 때 탄식의 언어로 기도하지 않는 자는 그 마음이 이미 죽어 있는 자이거나, 성령 받지 못한 자입니다. 나에게 일어나는 악한 일에 대해서 죽어 있고, 내 이웃에게 일어나는 악한 일에 대해서 죽어 있는 사람은 탄식하지 않습니다. 어둠이 걷히길 바라지 않고, 날이 밝기를 기다리지도 않습니다. 그야말로 어둠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빛의 자녀라면 지금 내 삶에 드리워져 있는 어둠이 물러가길 탄식할 것입니다. 빛의 자녀는 어둠 속에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할 때 탄식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으며, 탄식의 언어는 우리의 인상을 찌푸리게 만들고 눈에서 눈물이 나게 하며 가슴을 두드리게 만듭니다. 여러분은 기도할 때 어떠한 언어와 어떠한 모습으로 기도하시는지요? 성령이 함께 하시는 탄식의 언어로, 탄식의 형상으로 기도하시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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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