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의 달밤
달 밝은 밤
나는 분명 발가벗고 바깥에 서 있었다
그러나 지나가는 사람들 중 아무도
나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이 없었다
이건 미스터리가 아니다
곁눈질조차 없던 그 거리에서
나는 뚝 뚝 녹아 내리는 달빛을
온 몸에 받으며
달빛 뒤로 숨을 수 밖에 없었다
같은 일이 반복되는 건 슬픈 일이다
미안해서 슬픈 게 아니라
잊혀지기 때문에 슬픈 것이다
내가 사는 세상에 소풍 오는 천사들은 없었다
나에게 눈길을 주던 그 처녀는
장님이 되어버렸고
나에게 말을 걸어주던 그 청년은
벙어리가 되어버렸다
더 이상 상대방에게
욕망의 대상이 되지 않을 때
인간은 비로소 늙는다
달 밝은 밤 발가벗은 채로
나는 얼마나 더 힘들어야 하나
얼마나 더 부끄러워야 하나
'시(詩)'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지구가 반대편으로 돈다면 (0) | 2015.12.05 |
---|---|
시론 (0) | 2015.12.05 |
8월의 구름 (0) | 2015.09.02 |
함부로 감사하지 마라 (0) | 2015.05.22 |
이방인 (2) | 2015.05.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