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사랑하기

 

나는 매일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공간에 앉아 똑같은 풍경을 바라보며 똑같은 일을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로 이러한 일이 더 정형화됐다. 한마디로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이다.

 

일상은 원래 지루하다. 그런데 나는 그 지루하기 짝이 없는 일상을 사랑한다.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는 일이 더 힘들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은 아니다.

 

나는 30대 초반에 조지아의 한 시골에서 개척을 했다. 조지아주 자체가 시골인데, 조지아주에서 가장 번영한 도시인 애틀란타에서 남쪽으로 2시간 들어가야 있는 시골에 둥지를 틀었으니 얼마나 지루했겠는가. 도시에서만 살던 내가 적응하기 쉽지 않은 곳이었다. 그러나 그때는 그게 하나님의 부르심이었다는 소명의식에 하루하루를 잘 견디었다.

 

나는 그곳에서 지루한 일상을 '견뎌내야만' 하는 상황 속에서 살았다. 지루한 일상에 '강제적으로' 적응해야만 하는 운명은 때로 불평을 불러왔지만, 그래도 그 불평을 이내 막아준 것은 '사명'이었다. 그곳에 주님의 몸된 교회를 든든하게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 말이다. 그렇게 지루한 일상은 7년동안 계속되었다.

 

7년 정도 지나니, 지루한 일상에 불평이 사명감을 앞지르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때, 하나님은 나에게 책 한권을 던져 주셨다. 그때 만난 책이 CBS의 정혜윤 PD가 쓴 <여행, 혹은 여행처럼>이라는 책이었다.

 

나는 그 책에서 '일상이 삶의 전부다'라는 말을 읽었다. 그리고 일상을 여행처럼 살지 못하는 인생이 얼마나 허무한 인생인지 알게 되었다. 일상은 삶의 전부인데, 삶의 전부인 그 일상을 사랑하지 못하면, 나는 결국 나의 삶을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 책을 만난 이후로, '지루한 나의 일상'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다. 7년동안 지루한 일상을 '강제적으로' 사랑했는데, <여행, 혹은 여행처럼> 책을 읽은 뒤, 강제적 사랑은 '자발적 사랑'으로 바뀌었다. 일상을 자발적으로,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하니, 삶의 모든 게 달라 보였다. 그야말로, 삶 자체가 '여행, 혹은 여행처럼'으로 보였다.

 

지루한 일상을 진심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지 7년이 또 지났다. 그러니까, 내가 '지루한 일상 사랑하기'를 강제적으로, 그리고 자발적으로 하기 시작한 뒤로, 도합, 14년이란 세월이 흐른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7년동안 '강제적으로' 일상을 사랑하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그 강제적 사랑의 시기가 없었다면, 자발적 사랑의 시기는 그만큼 깊고 풍성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지루한 일상에 대한 강제적 사랑의 시기가 있었기에, 자발적 사랑 이후의 삶은 만족과 기쁨으로 가득 차게 된 것이라 믿는다. (그렇다고 고뇌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고뇌 가운데서도 말할 수 없는 만족과 기쁨이 있다. 이게 신비한 거다.)

 

어느덧 20년 목회 경험을 지니게 된 나는, 목회를 시작하는 후배들에게 한 가지만 조언을 해달라는 부탁을 누가 해온다면, 이런 조언을 해주고 싶다.

 

"젊은 시절, 불혹의 나이 40에 들어서기 전, 10년 정도, 시골에 가서, 자기 자신을 아주 지루한 일상 속으로 던져 넣으십시오. 그곳에서 지루함에 몸부림치며, 고독해 하며, 고통스러워 하며, 하나님과 그리고 자기 자신과 만나십시오. 그리고 그곳에서 그 지루한 일상을 마침내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축복을 안아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나머지 목회 인생은 '여행, 혹은 여행처럼' 의미 있는 인생이 될 것입니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