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시]
묵시는 현재 일어나는 정치적 사건을 은밀히 해석하는 장치이다. 현재 일어나는 정치적 사건을 '대놓고' 해석하면 권력자들에게 핍박을 받게 되므로, 사람들은 묵시라는 장치를 통해 불필요한 핍박을 피해 '은밀하게' 정치적 사건을 해석한다.
묵시는 역사를 다른 차원에서 바라보게 도와준다. 역사는 인간의 관점에서 서술되지만, 묵시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서술된다. 묵시를 다룰 줄 아는 사람은 두 개의 눈이 필요하다. 역사를 보는 눈, 그리고 묵시를 보는 눈. 즉 이 땅에서 돌아가는 정치적 상황을 보는 눈과 그 이면에 흐르는 진리/진실의 상황을 보는 눈이 그것이다.
성경은 묵시 장치를 아주 잘 활용한다. 대표적으로 다니엘서가 있고, 마가복음이 있고, 또한 요한계시록이 있다. 다니엘서의 묵시는 다른 두 성경의 원천이기도 하다. 다니엘서는 안티오쿠스 치하 그리스 법정에서 피고가 되어 핍박 받는 유대인들에 대한 묵시이다. 다니엘의 묵시 환상은 유대인들의 무죄를 입증할 '정의로운 더 높은 법정'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안티오쿠스의 불의한 법정에 의해서 유죄로 선고 받았어도 유대인들은 결코 낙심하거나 절망할 필요가 없다.
묵시가 필요하지 않았던 때가 있었나 싶다. 역사는 늘 권력자들의 횡포 때문에 정의가 왜곡되고 의인이 핍박을 받으며, 법정은 늘 권력자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그들만의 놀이터였다. 예로부터, 역사는 묵시를 필요로 했다. 묵시 없이 역사는 바르게 해석될 수 없었고, 묵시 없이 역사에 저항할 수 없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묵시 없이 요즘 법정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어떻게 직면할 수 있는가.
한 책에서 이런 문장을 보았다. "권세자들 앞에서 무죄 선고를 받는 것은, 인자의 법정에서는 창피당할 일이다." 물론 반대는 영광스러운 일이다. 권세자들 앞에서 유죄를 받으면, 인자의 법정에서는 칭찬을 받는다. 그러므로, 우리, 권세자들의 법정에서 유죄를 받았다고 낙심하거나 절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자. 권세자들의 법정과 비교될 수 없는 진정으로 정의로운 더 높은 법정이 있다. 이런 묵시적 안목을 가진 자는 자기를 부인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 길'을 갈 것이다.
그대여, 힘을 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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