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간절한 신앙고백

 

요즘 한국 드라마 중에 ‘고려-거란 전쟁’이라는 게 있습니다. 배우 최수종이 오랜만에 사극 주인공으로 출연했어요. 최수종이 고려의 충신 강감찬으로 분해서 나옵니다. 한국에서 지하철 2호선을 타면 낙성대역이 있는데, 강감찬 장군의 집터 입니다. 서울대 옆에 있어서, 모르는 사람은 또다른 대학교인 줄 알죠.

 

고려 시대 고려를 괴롭히던 제국은 거란입니다. 거란족의 득세 때문에 고려는 늘 숨죽이며 살았습니다. 고려의 왕은 거란 황제에게 허락을 받아야 왕위에 오를 수 있었습니다. 한국 역사를 보면 늘 주권이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조선시대에는 명나라의 그늘 아래서 살았죠. 지금은 미국의 그늘 아래 살고요. 약소국의 설움입니다.

 

구약의 열왕기를 보면 이스라엘도 동일한 역사를 보여줍니다. 이스라엘은 애굽, 앗수르, 그리고 바벨론의 등살에 늘 괴로워합니다. 애굽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우방국가이지만, 애굽이 이스라엘에게 늘 살가웠던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애굽도 앗수르와 바벨로에 밀려 결국 이스라엘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남유다의 마지막 왕들 이야기를 보면 국제 정세가 더 안 좋아집니다.

 

요시야 왕이 애굽 왕 느고와의 전투에서 죽고, 그 뒤를 이은 여호아하스는 애굽 왕의 재가를 받은 왕이 아니라 애굽 왕에 의해 3개월만에 축출당하고 맙니다. 여호아하스는 애굽으로 끌려가 거기서 죽습니다. 대신 여호야김이 왕위에 오릅니다. 여호야김의 통치도 아주 어려움 가운데 있었습니다. 애굽에 의해 왕위에 올랐기에 친애굽 정책을 썼지만, 바벨론의 침공으로 어쩔 수 없이 바벨론에게 줄을 서게 되죠. 그러다 애굽과 바벨론의 전투에서 애굽이 승리를 거두자 다시 애굽에 손을 내밀었다가 바벨론에게 괘씸죄가 걸려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죽습니다. 그 이후, 국운이 다하여,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을 거치며, 남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 당합니다.

 

요즘에 발생하는 전쟁을 보아도 전쟁은 온 나라를 초토화시키고 인간성을 말살시키는 것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습니다. 고대 사회에는 전쟁이 일어나면 요즘보다 더 비참했습니다. 인류 사회는 전쟁을 막아보려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전쟁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비참함 가운데 최고였습니다. 요즘, 우리들이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지 않는 것은 참으로 감사한 일입니다.

 

요시야가 죽고, 남유다의 마지막 네 왕은 격동의 세월을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에 대한 성경의 평가는 매우 박합니다. 모두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훌륭한 정치를 해도 살아남을까 말까 한 급박한 상황 속에서 남유다는 안타깝게도 좋은 정치인을 배출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냥 멸망 당하고 맙니다. 그런데, 그렇게 멸망 당하는 역사를 기록하고 있는 열왕기 사가들은 상식적으로 잘 이해되지 않는 기록을 남깁니다. 그 기록을 보면, 그렇게 남유다가 멸망 당하는 것은 모두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는 ‘신앙고백’입니다.

 

우리가 성경의 기록과 거리를 두고 보아서 그렇지, 감정을 이입해서 보면, 이러한 고백은 상식적이지 않습니다. 좋은 일이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셨어요!’라고 신앙고백 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러한 어려운 일이 나에게 닥친 것을 ‘하나님께서 하셨어요!’라고 고백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습니다.

 

열왕기 사가들(역사를 기록한 사람들)의 기록은 그야말로, 처절한 기록이고, 가장 간절한 신앙고백입니다. 열왕기 사가들이 우리들에게 주는 신앙의 교훈은 준엄합니다. 1) 망하더라도 하나님 안에서 망해야 다시 살 수 있다. 2) 하나님에 대한 절대 신뢰는 생명이다. 3) 하나님의 선하심을 고백하라. 이 신앙이 옳다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사건은 단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입니다. 열왕기 사가들은 나라가 망한 상황 속에서 오직 하나님에게만 소망을 두었습니다. 망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니, 살아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실 거라는 강력한 소망입니다.

 

너무 비참한 일을 겪으면 이것은 마치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내리신 거라는 고백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비참함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그 비참함에서 나를 건지실 이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밖에 없다는 처절한 신앙고백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신앙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도 배웁니다.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다 결국 십자가에 달리셨지만, 그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배신하거나 욕하거나 신세한탄 한 것이 아니라, 당신의 영혼을 하나님께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게 하셨습니다.

 

신앙은 이 삶의 깊이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좋을 때는 누구나 ‘할렐루야 아멘’ 할 수 있지만, 상황이 좋지 않을 때, 우리의 입술에서는 과연 어떠한 말이 나올까요? 사실, 좋을 때 ‘하나님께서 하셨다!’라고 신앙고백 하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보다 더 어려운 것은 힘들고 지칠 때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의 삶이 힘들고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늘 기쁘고 즐거운 가운데 찬송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입술에서 흘러나오길 소망합니다. 하지만, 어렵고 힘든 일이 있더라도, 주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는 것은 우리에게 아주 큰 유익이 있습니다. 좌절금지. 우스갯소리가 아니라 신앙의 깊이에 들어간 이들의 실제 상황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주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믿어보세요. 무덤 문을 열고 부활의 역사를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믿는 자들의 가장 강력한 신앙의 무기입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