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교회에서 배우라

 

19세기, 20세 초, 영국의 별명은 ‘해가 지지 않는 나라’(the empire on which the sun never sets)였죠. 이 별명은 특별히 영국에만 붙었던 것은 아닙니다. 제국을 이루었던 나라들에게 일반적으로 붙여졌던 별명이고, 이제 이 별명은 미국에게 돌아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영국을 주목하는 이유는 자본주의가 발전된 이후 사회가 급변하면서 겪게 되는 모든 문제점들을 제일 먼저 겪은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영국은 농촌 중심 사회에서 도시 중심 사회로의 변경을 가장 먼저 경험한 나라입니다. 과학의 발달로 인해 기계가 발명되고, 기계를 이용한 산업은 농촌을 붕괴시키고 도시 문화를 형성합니다. 농사 짓고 살던 농부들은 더 이상 농촌에서 일 자리를 얻을 수 없어 도시로 몰리게 되는데, 그것 때문에 도시 빈민 문제가 영국 사회를 괴롭혔습니다. 이러한 일이 발생한 것이 18세기입니다. 이때 존 웨슬리 목사님이 벌였던 ‘Methodist’ 운동은 도시 빈민들을 구제하며 그들에게 희망을 주었고, 그것을 계기로 ‘감리회’(Methodist)라는 교파가 탄생합니다.

 

도시가 발달하면서 발생하는 각종 사회적 문제를 먼저 경험한 영국에서는 정치이론과 사회이론이 발달합니다. 당면한 문제들을 해결하려다 보니, 정치/사회 이론이 발전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차 대전 이후, 영국은 노동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이주자를 받아들였고, 전혀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의 사람들이 이주해서 영국 사회의 한 부분을 구성하면서 각종 사회 문제들이 발생합니다. 특별히, 종교 문제가 컸는데, 이슬람 국가 또는 힌두 국가에서 이주하여 온 이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습니다. 그래서 영국 사회에서는 일찍이 ‘다원주의’라는 말이 등장합니다.

 

다원주의는 영국 사회의 통합과 안정을 위해서 채택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었습니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으면, 사회가 불안정해지고 폭력사태가 발행하여 나라를 유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던 것이죠. 보수 기독교인들은 ‘다원주의’라는 말을 들으면 매우 불쾌해하는 경향이 있지만, 그것을 단순히 신앙의 타협으로만 봐서는 안 됩니다. 서로의 삶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은 타협이 아니라 평화입니다. 일찍이 존 로크가 <기독교의 합리성>(1695년 출간)에서 주장했듯이, 신앙은 ‘온유와 말씀선포와 모범적인 삶’으로 ‘설득’해야 하는 것이지, 힘으로 강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영국 사회는 2차대전 이후에 아주 급격하게 변하게 되는데, 그 중에서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종교 지형입니다. 영국국교회(성공회)에서 발간한 자료에 따르면, 교회에 정기적으로 참석하는 인구는 10% 밖에 되지 않습니다. (선교형 교회, 91쪽) 이것도 벌써 20년 전 통계이니, 지금은 그 인구가 더 줄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된 이유는 2차 대전 이후에 주일학교에 참석하는 어린이들의 비율이 매우 급격히 줄었는데, 이들이 어른으로 성장하면서 교회의 문화와 자연스럽게 멀어졌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신앙의 전수가 잘 되지 않았던 겁니다. 어려서 교회 경험이 없는 사람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교회에 안 다닐 가능성이 엄청 큽니다. 어린 시절의 교회 경험이 없기 때문에 교회를 아주 낯선 곳으로 받아들입니다.

 

영국교회는 기독교의 쇠퇴를 이미 2차 대전 이후, 1950년대부터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다원화된 사회에서, 그리고 기독교가 더 이상 사람들에게 매력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 사회에서 어떻게 교회를 세우고, 복음을 전할 것인지에 대하여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다른 말로 해서, 전세계 기독교 국가 중에 영국만큼 기독교의 쇠퇴를 먼저 경험한 나라도 없고, 영국만큼 교회와 신앙을 깊이 고민해본 국가도 없습니다. 그래서 현재 기독교 신앙의 쇠퇴를 경험하고 있는 미국이나 한국 같은 나라의 교회들은 영국 교회에서 배울 게 참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세대가 자녀세대에게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입니다. 선교학 연구에 의하면, 어릴 때 교회에 대하여 좋은 경험을 가진 사람일수록 일생동안 계속하여 교회를 잘 다닐 가능성이 클 뿐 아니라, 어른이 되어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더라도 교회로 다시 돌아올 확률이 높다고 합니다. 이는 마치, 어린 시절 부모님의 손에 이끌려 가보았던 동물원이나, 엄마가 해 주신 음식을 그리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인간에게 어린 시절의 경험은 일평생 영향을 미칩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세대의 책임은 큽니다. 사무엘이 은퇴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하여 이런 말을 합니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선하고 의로운 길을 너희에게 가르칠 것인즉 너희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행하신 그 큰 일을 생각하여 오직 그를 경외하며 너희의 마음을 다하여 진실히 섬기라”(삼상 12:23-24).

 

교회의 풍경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여러가지 사회적 요인도 작용했지만, 우리 자신도 우리의 모습을 조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녀들에게 교회에 대하여 ‘좋은 경험’을 하도록 잘 이끌지 못한 것은 아닌지, 반성을 해봅니다. 아직 늦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힘을 합하여 한마음으로 우리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자녀들에게 교회에 대하여 ‘좋은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조금 더 헌신한다면, 광야에서 길을 내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시는 하나님께서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조금 더 힘을 모아, 좋은 교회를 세워보아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