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로크: 기독교의 합리성]

ㅡ 로크에게서 배우는 기독교

 

중세를 벗어나 근대의 문을 열었던 정치 사상가 존 로크(John Locke). 홉스, 그리고 루소와 더불어 반드시 살펴야 하는 인물이다. 서구 근대 사상가들은 단순히 정치 철학을 펼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종교(기독교)를 비판했다. 그래서 근대 사상가들의 저술은 눈여겨봐야 할 신학 서적이기도 하다. 중세의 사고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종교 기반 사회로부터의 ‘탈출’을 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중세까지 국가는 종교(교회)의 시녀였다. (철학은 신학의 시녀라는 말과 비슷하다). 가부장제를 생각해 보면 이게 무슨 말인지 어렵지 않게 이해된다.

 

유교의 종교적 이념을 통해서 설명해 보자면, 국가는 왕을 보존하는 기구로 기능한다. 모든 국민은 왕을 받들어 모시는 일에 동원된다. 국민의 개별적인 삶은 모두 왕을 위한 헌신으로 표현된다. 가정은 이러한 왕정제도의 미니어처 역할을 했다. 집안의 어른,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는 가정의 왕으로 군림했다. 가정은 ‘가장’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가정의 모든 활동은 가장을 보존하는 데 헌신된다. 가장을 좀 더 확대하면 ‘가문’이 된다. 가문의 모든 식솔들은 가문의 안위를 위해서 희생된다.

 

서구 중세는 종교가 사회의 기반이었다. 국가도 국민도 모두 종교를 보존하는데 모든 힘을 쏟았다. 중세의 왕이 왕권 신수설을 주장할 수 있었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왕은 신의 뜻을 받드는 사람이다. 왕은 종교(교회)를 지키고 번성하게 하는데 특별한 임무를 받은 사람이다. 그래서 왕은 자신이 가진 권력으로 교회를 보호했고, 교회는 왕에게 신적인 능력을 부여해 왕을 신성화시켰다. 그래서 왕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질 수 있었고, 교회는 온갖 혜택을 누릴 수 있었다.

 

근대 정치사상은 바로 이것에 제동을 건 것이다. 그래서 근대 사상가들의 저술들은 모두 국가와 종교에 대한 비판으로 가득하다. 또한 국가와 종교의 관계를 재정립하고, 국가와 종교의 역할을 정의하는 데 힘을 쏟는다. 그 중에 존 로크가 있다.

 

“사랑하라. 그리고 네 마음대로 하라.” 언뜻 보면 낭만적으로 들리는 이 말은 아우구스티누스가 한 말이다. 이 말은 국가와 교회가 이방인들의 개종을 위해서는 ‘강제적인 힘’을 사용해도 된다는 맥락에서 나온 말이다. 기독교는 진리이고, 그 진리를 전하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힘을 사용해도 된다는 것이다. 그 근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사랑에 있다. 기독교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아 구원에서 멀어진 이방인들을 정말로 사랑한다면 그들이 구원을 받게 하기 위해서는 강제적인 힘을 사용해서라도 그들을 구원받게 만들어야 한다는 논리이다. 로크를 비롯한 근대 사상가들은 이러한 논리에 반대한다. 그러면서 로크가 펼친 사상은 ‘관용론(toleration)’이다.

 

로크의 사상적 배경을 보면 흥미로운 점이 발견된다. 로크는 엄격한 칼빈주의적인 배경에서 성장을 했고, 유명한 청교도 설교가인 오웬의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로크는 연인 마다리스 마샴을 통해서 기독교 신앙에 대하여 깊은 통찰을 할 수 있었다. (남자는 여자를 잘 만나야 한다. 물론, 여자도 남자를 잘 만나야 한다. 서로 잘 만나면 좋은 일이 생긴다. 로크도 그랬다.) 로크의 연인 마샴의 아버지는 그 당시 유명했던 캠브리지 플라톤주의자인 랄프 커드워쓰(Ralph Cudworth)이다. 로크는 연인 마샴의 권고로 성경과 신학서적을 열심히 읽었다. 특별히, 로크는 마샴의 아버지 랄프 커드워쓰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이것은 로크가 캠브리지 플라톤주의에 영향을 받았다는 뜻이다.

 

캠브리지 플라톤주의는 오늘날 우리들에게 ‘Radical Orthodoxy’(급진적 정통주의)로 알려진 사조이다. 물론 오늘날 급진적 정통주의는 로크 당시의 캠브리지 플라톤주의를 보완, 발전시킨 신학사상이지만, 그 기조는 같다. 이들은 당시에 새로 시작되는 과학의 발전과 더불어 사회가 세속화되는 것을 반대하고, 고전적인 기독교 신앙, 즉 플라톤과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적 기반, 또는 세계관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을 주장한다. 오늘날 급진적 정통주의 신학을 이끌고 있는 존 밀뱅크, 캐서린 픽스톡, 그레이엄 워드는 이 세상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 안에 있다는 것을 주장하기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학문을 신학의 틀에서 해석하는 작업을 한다. 세속의 영역과 신학의 영역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은 신학의 영역 안에 있다는 뜻이다. (급진 정통주의 신학을 조금 더 알고 싶으면, 바이블 오디세이에서 ‘급진적 정통주의’를 검색해 읽어 보시라.)

 

종교(기독교)에 대한 로크의 생각은 그의 주요 저서 <인간 오성론>, <통치론> 등에 나타나 있지만, 그것에 대한 가장 중요한 저서는 1695년에 출간된 <기독교의 합리성>(The Reasonableness of Christianity)이다. 중세의 종교(기독교)는 다분히 강제적이었다. 국가가 국민들에게 신앙을 강요했다. 근대 사상가들은 이러한 종교 형태는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인간 영혼의 문제는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서 외부의 힘에 의해서 결정되면 안 되고, 순전히 자발적인 선택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의 배경에는 그 유명한 ‘사회 계약설’이 있다. 통치자에게 주어지는 국가 권력은 신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국민들과의 합의에 의한 계약에서 온다는 것이다. 사회 계약설은 개개인의 자발적이고 자율적인 자유를 중시한다. ‘계약’은 외부의 힘이 아니라 내부에서부터 오는 자유이다.

 

신앙의 문제에 있어, 더 이상 외부의 개입이나 강제를 거부하는 근대 사상은 기독교의 전파 방식에 큰 변화를 가져온다. 중세까지만 해도 기독교 전파는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제 종교는 국가의 도움이나 국가의 강제력 없이 스스로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진리라는 것을 입증해야 한다. 여기서 우리는 기독교의 힘이 약화된 것이라고 느낄 수 있지만, 로크의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다. 영혼의 문제는 가장 중요하고 가장 사적인 것이기에, 그래서 남에게, 그것이 국가라할지라도, 절대로 남에게 맡길 수 없다고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이기에 자기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로크는 신앙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했다.

 

영혼의 문제는 개인의 문제이기 때문에 외적인 힘에 의해서 강제로 이루어질 수 없다. 그렇다면 종교는 어떻게 사람들에게 자신의 진리를 전파할 수 있을까? 로크는 여기에 대해서 세 가지를 말한다. 온유, 설교, 그리고 모범적인 삶이다. 이것을 설득(Persuasion)이라는 말로 표현한다. 종교는 설득을 통해서 전파되어야 하지, 힘에 의해서 전파되면 안된다는 뜻이다. 로크는 자신의 저서 <기독교의 합리성>에서 더 이상 국가의 힘에 의지할 수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교회를 향해서 사람들을 설득하여 기독교의 진리를 전파하는 방법에 대해서 논한다.

 

이 책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은 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진리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이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서 로크는 기존의 전통이나 신학자들의 의견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여 나름의 대답을 내놓는다. 그래서 <기독교의 합리성>의 부제는 ‘성서에 제시된 대로’(As delivered in Scripture)이다. 위에서 언급했듯이, 로크는 캠브리지 플라톤주의의 영향으로 신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것은 신앙을 이성의 한계 안에 가두려 하지 않고 이성을 넘어서는 계시의 중요성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로크가 신앙을 이성의 한계 안에 가두려 했던 이신론자들이나 유니테리언들과는 다른 신앙의 결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것은 기독교의 합리성을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우리는 대개 ‘합리성’은 이성에 근거를 두는 것으로 이해한다. 그러나 로크는 이성의 연역적인 관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제안자(계시자)가 신실하면 믿을 만하여 그 명제(주장/복음)에 동의하는 것은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계시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대한 신뢰가 곧 합리적 기독교 신앙의 근간이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계시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면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고 로크가 이러한 주장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성경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는 뜻이기도 하다. (애인 잘 만난 덕?)

 

여기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로크가 ‘기적’(miracle)’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것이다. 로크는 <기독교의 합리성>에서 기적은 계시나 예언이 참되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주어지는 것이라고 말한다. 성경을 보면, 기적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요소로 등장한다. 로크는 이 점을 들어 복음 자체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의해서 기독교는 외부(국가)의 힘(도움) 없이 전도/선교를 할 수 있는데, 그 능력이 바로 말씀과 기적의 능력이라고 말한다. 로크가 기적을 기독교 전파의 강력한 수단 중 하나로 보는 것은 참 흥미롭다. 로크에게 기적은 사람을 외부에서 강제로 설득하는 일이 아니라 내부에서 자발적으로 설득하는 도구이다.

 

로크는 기적과 더불어서 사람들을 설득하는 도구 도덕을 말한다. 여기에서 로크는 역사적인 신앙과 구원하는 신앙을 구분한다. 역사적인 신앙은 단지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믿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신앙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원하는 신앙을 말한다. 그것은 참된 회개를 통하여 새로운 삶으로의 도약이다. 이것을 로크는 도덕이라고 일컫는다. 국가의 도움이나 강제력 없이 기독교를 전파해야 하는 입장에서 교회(그리스도인)는 사람들에게 도덕인 삶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이 곧 설득의 도구이다.

 

국가의 강제나 도움 없이 기독교를 전파해야는 상황에서 교회는 무엇을 통해서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 다시 정리하면, 로크는 온유와 설교와 모범적인 삶을 제시한다. 이것을 통해 사람들을 설득해야지, 다른 방법을 통해서 신앙을 강요하거나 강제하면 안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야만 하는 이유는 국가로부터 더 이상 비호를 받지 못하는 교회의 연약함 때문이 아니다. 이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영혼의 문제는 국가조차도 개입할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서구의 정치철학은 국가와 교회의 관계를 다시 정립하면서 발전했다. 특별히 근대 정치철학은 국가와 교회(종교)가 결탁한 것 때문에 발생해온 비극적인 일들에 대해서 반성하며 그것을 개선해 보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발전했다. 그래서 근대 사상가들은 국가와 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며, 국가의 역할과 교회의 역할을 새롭게 정립하고,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구별했다. 우리는 이러한 현상을 세속화라고 부르지만, 세속화라는 말이 곧 신앙의 축소나 타락을 의미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서구의 역사를 보면 대부분의 피비린내 나는 전쟁은 모두 종교 때문에 발생한 것이었다. 로크도 그 당시 영국 국교회를 신랄하게 비판하는데, 본인이 성경을 직접 연구해 보니 영국 국교회가 성경과 다르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로크는 성경으로 돌아가자(성서로 돌아가자)는 말을 많이 한다.

 

성경으로 돌아가자. 성서로 돌아가자. 정말 좋은 말이다. 그러나, 이게 참 쉽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알고 있다. 해석의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로크가 말하고 있는 ‘관용’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로크의 종교 관용론의 핵심은 종교다원주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교파제도를 말하는 것이다. 로크의 종교 관용은 기독교 신앙을 전제한 관용이다. 다만, 기독교 신앙 안에서 자유가 허락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그 당시 영국 국교회의 횡포를 겨냥한 것인데, 영국 국교회와 청교도 전쟁으로부터 얻은 교훈을 반영한 것이다. 관용이란 기독교 신앙의 독특성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표현하는 다양한 교회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다른 교파에 대해서 좋은 마음을 가져야 하는 근거로 사용될 수 있다. 관용은 혐오와 전쟁으로부터 우리를 구원한다.

 

교회의 선교가 어려운 시절이다.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할까? 한 가지 방법은 근대 정치사상가들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로크, 홉스, 루소, 그리고 칸트를 비롯한 근대 정치철학자들의 책은 단순히 정치철학 서적이 아니다. 모두 국가와 교회를 비판하는 정치신학서적이다. 그들은 교회를 그냥 무작정 비판하고 있지 않다. 그들은 교회가 교회다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대안을 제시한다. 기독교인들은 그들의 비판에 눈이 가려져 고개를 돌리지만, 그러지 말고, 그들이 비판하면서 제시하는 대안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그러면 이 어려움 시절을 뚫고 지나갈 수 있는 좋은 지혜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로크가 말하는 설득의 원리를 한 번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온유, 설교, 모범적인 삶. 그리고 기적.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