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사람들

 

남유다의 요시야 왕은 한국으로 따지면 구한말의 고종 왕 같은 존재입니다. 나라의 운명을 어떻게든 좋게 바꾸어 보려고 노력을 많이 한 왕입니다. 요시아는 아버지 왕, 아몬이 암살을 당한 바람에 그 자리에 8세의 나이로 왕위에 올랐습니다. 쉬운 인생이 아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왕위에서 31년간 통치합니다. 국운이 풍전등화에 놓인 상황에서 통치를 열심히 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정직히 행한 왕, 다윗의 모든 길로 행한 왕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역대 왕 중에서 히스기야와 더불어 최고의 찬사를 받은 왕입니다.

 

요시야 시대에는 예레미야와 스바냐가 활동을 했습니다. 예레미야나 스바냐를 읽어보면 명확히 드러나고 있지만, 요시야 시대는 국제정세가 매우 안 좋을 때였습니다. 남유다는 애굽과 바벨론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해야 했고, 전통적인 우방 애굽과 가까이 지내면서 새로운 제국으로 발돋움은 바벨론의 세력 확장에 대응을 해야 했습니다. 요시야 시대는 뭔가 심상치 않은 국운이 맴돌던 때입니다. 마치 한국의 구한말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요시야는 기울어지고 있는 국가의 운명을 바로 세워보고자 고군분투하면서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고자 왕권 강화 정책을 폅니다. 그 중 하나가 성전 수리입니다. 종교를 바로 세우는 일은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의 기강을 바로잡는데 필수 활동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러한 때에, 성전 수리를 하는 도중에 율법책 하나가 발견됩니다. 이 사건을 요시야 왕과 더불어 대신들의 시선을 사로잡았고, 국가의 가장 큰 이슈가 되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뭔가 돌파구가 필요했던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발견된 율법책이라, 이것을 통해서 뭔가 국면을 전환시킬 수 있을 것 같은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던 것이죠. 요시야 왕은 율법책 발견을 토대로 국가의 운명을 바꾸어 보려고 노력합니다. 그의 개혁 정책을 간절하고 처절했습니다.

 

요시야 시대의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마음이 애처로워지기도 하지만, 배우는 게 참 많습니다. 무엇보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사람들의 생생한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몇 사람을 살펴보면, 첫째로 요시야 왕이 눈에 들어옵니다. 그는 왕권을 강화하여 나라를 바로 세우고자, 26세의 젊은 나이에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성전 수리를 위해서 제사장 그룹과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 신앙이 깊은 왕이었습니다. 무엇보다, 요시야 왕은 겸손과 회개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신앙인입니다. 율법책이 발견되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하자, 그는 곧바로 옷을 찢고 회개합니다. 말씀을 들으려 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이것은 나중에 훌다의 예언을 통해서 그가 유다 멸망의 비극을 경험하지 않고 죽게 되는 은혜를 누리는 원인이됩니다.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 이것은 신앙의 리트머스지 역할을 합니다. 신앙 상태를 평가할 때, 말씀을 들으려는 자세가 있는지 없는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예레미야서를 보면, 여호야김 왕은 완전히 정반대의 행동을 합니다. 여호야김은 율법책을 손에 들게 되었을 때 그 말씀을 들으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불에 던져 태워버립니다. 신앙이 없다는 뜻입니다. 어려움이 닥치면, 교회 나오는 것부터 발걸음을 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려움이 닥칠수록 말씀을 들으려 예배의 자리를 더 사모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어려움으로부터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사람들 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서기관 사반(Shaphan)입니다. 서기관 사반은 요시야 왕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던 인물입니다. 사반은 요시야 왕의 의중을 잘 파악하여 개혁을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사반 가문은 어려운 시대에 빛의 역할을 합니다. 예레미야를 보면, 가문 전체가 예레미야를 돕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사반의 세 아들이 예레미야 선지자를 돕습니다. 아히감은 예레미야가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를 보호해 주고, 엘라사는 예레미야의 목회서신을 바벨론에 전달하는 역할을 합니다. 그리고, 그마랴는 정부관리로서 자기 방에서 예레미야의 예언을 낭독할 수 있도록 방을 내어줍니다. 사반의 손자 그다랴는 시드기야 왕 후 남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망한 뒤 총독이 되어서 유다를 통치합니다.

 

어려운 시기에 요시야가 왕권을 강화하고, 제사장 그룹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며 성전수리를 감행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반의 적극적인 도움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어려운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남유다 백성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사반의 가문이 적극적으로 도왔기 때문입니다. 사반과 그의 가문이 없었다면, 요시야 왕의 개혁도, 예레미야의 말씀사역도 진행조차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사반과 그의 가문은 길이길이 기억될 만합니다. 그리고, 사반처럼 사역을 돕는 신앙인, 그런 집안이 되는 것은 참 영광스러운 일이고 고마운 일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사반과 같은 신앙인이 되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면, 하나님의 큰 은혜를 입게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어려움을 이겨나가는 사람들 중 여선지자 훌다가 있습니다. 훌다는 예루살렘 둘째 구역에 거주했던 인물입니다. 예루살렘 둘째 구역은 히스기야 왕 때 확장한 구역입니다. 히스기야 왕 때는 이미 북이스엘이 앗수르에 의해 망하고, 난민들이 남유다로 유입되던 시기입니다. 북이스라엘의 난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히스기야가 세운 곳이 바로 예루살렘 둘째 구역입니다. 훌다가 그곳에 살았다는 뜻은 그가 북이스라엘 출신 선지자였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요시야 왕 당시 예레미야와 스바냐 같은 걸출한 선지자들이 활동했음에도, 성전 수리 도중 발견된 율법책에 대한 하나님의 예언을 듣기 위해 여선지자 훌다를 찾았다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예언자로서 덕망이 높았다는 뜻입니다.

 

훌다는 이미 북이스라엘이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 당한 것을 경험한 선지자입니다. 그리고 왜 북이스라엘이 멸망 당했는지도 알고 있는 선지자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훌다의 마음은 애처롭고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남유다가 북이스라엘의 길을 따르지 말아야 하는데, 그 길로 가는 것 같아 그 누구보다도 애처롭고 안타까웠을 것입니다. 훌다는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하나님이 심판하실 것과 요시야가 생전에 유다 멸망의 참상을 보지 않을 것이라는 예언을 전하고 있지만, 그 예언을 전하는 심정은 남유다가 마음을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의 은혜를 입어 멸망을 피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습니다. 훌다의 예언은 짧지만, 거기에 담긴 간절함은 우주보다 컸을 것입니다.

 

어려움을 이겨나가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 안타깝기도 하지만, 그들의 모습을 닮고 싶기도 합니다. 어려움을 남몰라라 하지 않고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여 더 좋은 상황으로 공동체를 인도하려는 사람들의 고군분투는 우리의 마음에 용기를 줍니다. 좋은 공동체는 그냥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좋은 공동체는 어려움을 이겨나가려는 사람들의 헌신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힘을 보태고 힘을 합치고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은 뜻밖의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우리 모두가, 요시야, 사반, 훌다 같은 믿음의 자녀들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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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