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신주 아이러니]

 

강신주의 책을 읽으면 곳곳에 기독교 혐오가 배어있다. 그의 주장이 철학책 좀 읽는 한국의 교양인(또는 지식인)들의 기독교 혐오에 일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런데, 그의 책을 읽다보면 정말로 아이러니한 것이 그가 주장하는 자유니 사랑, 그리고 인간에 대한 애정 같은 것은 모두 기독교의 가치들이라는 것이다. 그가 자본주의를 비판하면서 소유의 형식에 대하여 고민할 때 했던 말을 보면 그의 주장이 곧 기독교의 주장과 별반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소유 형식의 극복을 고민해야 해요. 과연 소유 형식이라는 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해요. 예컨대 우리는 토지를 소유하잖아요. 그런데 과연 인간이 땅을 가질 수 있는 걸까요? 땅이 인간을 갖고 있는 게 아닐까요? 수명이 짧은 인간이 수명이 긴 것을 가질 수는 없잖아요." (강신주, <맨얼굴의 철학, 당당한 인문학>, 447)

 

그의 통찰은 매우 좋다. 전복적이고 변혁적이다. 그런데, 그가 위에서 말한 땅의 소유에 대한 성찰은 이미 기독교 신학에서 오래전부터, 아니, 태초부터 했던 것이다.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땅에 대한 신학은 한마디로,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이다. '땅은 인간이 소유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이 기독교의 원래 정신이다. 많은 이들이 '토지공개념' 19세기 미국의 경제학자 헨리 조지가 주창한 개념이라고 알고 있지만, 그렇지 않다. 토지 공개념은 성경의 개념이다.

 

그렇다면 왜 강신주는 자기의 주장이 기독교의 주장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한 채, 기독교에 대한 혐오를 표출하고 있을까? 그는 강의를 시작하기 전에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다 나가라고 밝힌 바 있다. 출판사 편집자가 교회 다니는 사람이면 좋은 책을 낼 수 있을 지 불신한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볼 때, 그의 주변에 기독교에 대하여 정확히 알려줄 친구가 없는 것이 아닐까, 의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는 연세대학교 출신인데, 학교를 다니면서 철학공부, 문학공부, 역사공부는 많이 한 것 같은데, 신학공부는 전혀 안 한 것 같다. 연세대학교는 신학을 포함해 모든 분야의 인문학을 공부할 수 있을 몇 안 되는 학교인데도 말이다.

 

그는 인문학 강의를 할 때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다 쫓아내고 수업을 한다는 데, 연번에 걸친 어느 인문학 강의에서 마지막까지 자신의 강의를 들은 어느 한 신사가 마지막에 명함을 주며 이런 말을 했단다. '선생님의 모든 얘기가 모두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을 전한 신사는 '목사'였단다. 그 말을 들은 강신주는 '내가 강의를 잘못했구나, 어쩌다가 기독교의 틀 속으로 내 강의가 들어가게 된거지?'라고 생각하며, 종교비판 책을 써야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강신주의 인문학적 성찰은 정말 좋다. 많은 이들이 이 정도로만 사유를 해도 대한민국은 정말 좋은 사회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의 논의에는 철학적 사유는 풍성하지만 신학적 사유가 없다는 것이 한계이다. 그는 철학적 사유를 통해 허무주의를 극복하려고 하지만, 결국 신학적 사유를 하지 않는 것 자체가 허무주의를 극복하지 못하게 하는 한계로 남을 수밖에 없다. 왜 그런지, 강신주가 신학을 공부해 보면 알게 될 것이다.

 

그의 곁에 기독교 신학을 잘 전해줄 친구가 있으면 좋겠다. 내가 한국에 살았다면, 그 일을 해보고도 싶으나, 나는 이역만리 타지에 살고 있으므로, 그 일을 할 수 없어 안타깝다. 그의 삶 가운데, 신실한 기독교인들과의 교제가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래서 그의 인문학적 사유의 아이러니가 잘 극복되기를 바란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