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끊임없는 싸움]

 

체제 안에 들어가면 모두 '보수화'가 된다. 체제에 들어가면 인간은 안 보이고, 체제를 보장해주는 초월적 가치, 자본, 체제자체만을 보게 된다. 인간의 영혼도 몸이라 불리는 체제에 들어가면 보수화가 된다. 그런 현상을 리처드 도킨스 같은 사람은 '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라 부르는 것이다. 몸에 갇힌 영혼도 보수화되면 몸을 착취한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근본적인 죄, 자기집중이다.

 

철학과 종교는 이렇게 인간이 보수화되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인간을 억압하고 소유하고 소비시키는 그 보수성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하여 묻는다. , 좋은 철학과 훌륭한 종교는 체제에 가두어진, 또는 체제에 스스로를 가두려는 인간을 해방시키지만, 나쁜 철학과 형편없는 종교는 인간을 교묘하게 착취하면서 체제를 공고히 한다.

 

키아누리브스가 주연한 영화 <매트릭스>는 그 현상을 아주 잘 보여준다. 매트릭스 체제에 갇힌 인간은 자신들이 실제 행복한 인생을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그들이 살고 있는 현실은 체제가 조작한 가상현실에 불과하다. 가끔 일어나는 버그 때문에 현실을 의심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내 스미스 요원에 의해 그러한 의심은 제거된다.

 

매트릭스에 갇힌 그들의 현실이 조작된 현실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매트릭스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다. 철학과 종교의 기능은 바로 이런 것이어야 한다. 체제 바깥에서 조작된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들의 실상을 보여주는 것이어야 한다. 조작된 현실의 실상을 깨달으면 영화의 니오(Neo)처럼 체제(매트릭스)를 빠져나올 수 있다. 그 순간이 바로 구원의 순간이다.

 

그리고 구원의 순간을 경험한 이들은 진짜 싸움을 시작하게 된다. 자신처럼 매트릭스에 갇힌 자들을 구하는 일, 그 미션에 자기를 헌신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구원은 사명으로서의 깨어남, 다시 태어남이다.  

 

인류는 끊임없이 싸울 수밖에 없다. 매트릭스를 만들어 그 체제 안에 사람들을 밀어 넣으려는 자들과 그 사람들에게 자유를 찾아주려는 사람들의 싸움. 자기 자신의 몸에 갇힌 사람은 다른 사람을 구할 수 없다. 예수가 몸을 버려 세상을 구원한 것은 자기 구원이면서 동시에 인류의 구원이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처럼 몸을 버려 자기를 구원하고 동시에 인류를 구원하겠다는 결단이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여전히 체제에 묶여 자유를 잃은 노예로 살아가는 것일 뿐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