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직선의 잔인성을 거부한다]

 

내가 너에게 가장 빠르게 도달할 수 있는 길을 택한다는 것은 폭력이다. 선과 선을 가장 명료하게 그리고 빠르게 잇는 방법인 직선은 구부러진 곡선을 거부하거나 파괴해야 가능한 것이다.

 

서울에서 부산까지 난 경부고속도로가 얼마나 잔인한가. 그 직선 길을 내기 위하여 잘려나간 산이며 나무, 쫓겨난 주민이며 동물들을 생각해 보라.

 

사람과 사람 사이를 직선으로 잇겠다는 생각 자체가 얼마나 폭력인가. 너와 내가 직선으로 이어지는 순간, 우리는 서로의 아름다움을 음미할 수 없으며 곧 식상한 사이가 될 것이다.

 

나는 너에게 가되, 최대한 돌아가려 한다. 존재를 보듬는 그 구불구불한 길을 통해 너에게 가려 한다. 그 험난한 길을 걸으며 너의 존재를 사모하며, 길마다 펼쳐 있는 아름다운 풍경을 그냥 지나치지 않으련다.

 

모든 권력은 통치를 용이하게 하게 위해 직선의 역사를 요구하고 미화시키겠지만, 직선으로 이어지는 순간 우리도 그 잔인성에 물들어 생명을 파괴하게 되리니, 직선으로 이어지길 거부하며, 너와 나 사이에 나 있는 그 원래의 구불구불한 길을 오롯이 걸어가려는 열망과 용기와 성실이 우리가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원래의 아름다움을 지켜낼 것이다.

 

나는 직선의 잔인성을 거부한다.

'파루시아를 살다(신학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자본주의의 세기말 현상  (0) 2021.01.12
놀이의 신학  (0) 2021.01.07
역사와 꽃  (0) 2021.01.07
안식일이란?  (0) 2021.01.07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아이러니  (0) 2021.01.06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