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카비서] ㅡ 신정론과 부활

 

외경으로 분류되어 있는 '마카비서(Maccabees)'는 개신교 정경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다. 반면, 가톨릭을 비롯한 다른 기독교 전통을 지닌 교파에서는 '외경'이라는 이름이지만 '성경'에 포함되어 읽힌다.

 

특별히, 마카비 2서 같은 경우, 거기에 나오는 순교자들의 이야기와 그것과 연관된 진술들은 놓치기 너무 아까운, 귀한 신앙의 이야기들이다. (개신교의 성경에도 '외경'들이 포함되어 널리 읽혔으면 좋겠다.)

 

일곱 아들과 어머니의 죽음(순교) 이야기라든지, 유대인의 지도자 라지스의 순교(죽음) 이야기는 많은 감동과 영감을 준다. 그러한 순교의 이야기를 통해서 마카비서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분명 '신정론' '부활'이다.

 

신정론과 부활은 얽혀 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악을 경험하고, 의인이 악에 희생 당하며, 악인이 오히려 의인 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보지만, 그것은 모두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넘어서지 못한다.

 

신정론에 대해서 마카비서는 이렇게 말한다. "Therefore he never withdraws his mercy from us. Though he disciplines us with calamities, he does not forsake his own people. 따라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서 자비의 손길을 거두시지 않으신다 비록 우리에게 징벌을 내리신다 하더라도 그것은 당신의 백성을 채찍질하시는 것이지 절대로 버리시는 것이 아니다"(2 Maccabees 6:16).

 

일곱 아들과 어머니는 자비로우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리지 않고 끝내 죽는 길을 택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비록 이렇게 죽더라도 몸과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몸과 생명을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그들이 '부활신앙' 가운데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에 대해 김근주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부활신앙은 순교의 현장에서 피어난 꽃이며, 이 꽃의 뿌리는 그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언제나 동행하시며 인도하시는 자비로우신 야훼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는 것이다"(김근주, <구약으로 읽은 부활신앙>, 117).

 

일곱 아들과 어머니의 죽음도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지만, 마카비 2 14장에 나오는 '라지스의 순교' 이야기도 숨죽여 보지 않을 수 없다. 그의 순교 장면은 이렇게 그려지고 있다.

 

"still alive and aflame with anger, he rose, and though his blood gushed forth and his wounds were severe he ran through the crowd; and standing upon a steep rock, with his blood now completely drained from him, he tore out his entrails, took them with both hands and hurled them at the crowd, calling upon the Lord of life and spirit to give them back to him again. This was the manner of his death.

라지스는 그래도 죽지 않고 분노가 불처럼 일어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 피가 콸콸 솟고 상처가 중한데도 군중을 헤치고 달려 가서 우뚝 솟은 바위 위에 올라섰다.

그의 피가 다 쏟아져 나왔을 때에 라지스는 자기 창자를 뽑아 내어 양 손에 움켜 쥐고 군중에게 내던지며 생명과 영혼의 주인이신 하느님께 자기 창자를 다시 돌려 주십사고 호소하였다.  그는 이렇게 죽어 갔다."(2 Maccabees 14:45-46).

 

부활은 결코 '영혼 불멸'을 꿈꾸는 인간의 욕망을 채우는 수단이 될 수 없다. 부활은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고자 한 자, 이 세상의 불의에 맞서 끝까지 하나님의 의를 지킨 자, 이 세상의 불의에 맞서 끝까지 외로운 삶을 살았던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이 주시는 새창조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함부로 부활을 입에 담거나, 함부로 부활을 꿈꿀 수 없다. 부활을 믿기 때문에 객기를 부릴 수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고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을 온 몸으로 믿은 자만이 하나님께 간절히 구할 수 있는 자비인 것이다.

 

하나님이 물으시는 듯하다.

 

너에게 묻는다

연탄재 함부로 발로 차지 마라

너는 누구에게 한번이라도 뜨거운 사람이었느냐

ㅡ 안도현, <너에게 묻는다> 일부

 

부활을 생각하며, 나는 심보선의 시를 다시 읽는다.

 

(심보선, <> 전문)

 

오늘날 피를 제외하고는 따스함이 없다

피를 제외하고는 붉음도 없다

피가 그저 의미 없는 물이라고 말하지 마라

 

마지막 절규가 터지기 전까지

피는 이 세계의 유일한 장미

장미를 손에서 놓지 마라

 

예전에 우리는 노래를 함께 불렀다

여전히 같은 가사와 같은 선율의 노래

그러나 이제 그 노래는 완전히 달라졌다

그 노래를 가장 잘 불렀던 이들은 이미 죽었으니까

그러나 노래를 멈추지 마라

 

지금까지 손이 나와 동행했다

어두운 골목에서 나를 이끌고

다리 난간에서 나를 버텨주었던 손

나는 손을 신뢰했다

사랑하는 이의 볼을 어루만지고

그녀의 입에 밥을 떠먹였기에

무엇보다 내 몸이 가장 자주 피를 흘렸기에

 

장미를 손에서 놓지 마라

노래를 멈추지 마라

갓 지은 밥에서 피 냄새가 나는지 맡아봐라

 

저 멀리서 희미한 불빛 하나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

태양이 아닌 것

그러나 태양이라고 믿는 것

그쪽을 향해 걸어가라

 

마음의 빈민은 서로 반대인 것들이 뒤섞인 핏물

장미, 노래, , 너의 손, 나의 태양……

 

삶은 피의 무게로 저울질될 것이다

계속해서 걸어가라

번민하며

번민을 버리며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