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와 인내: 불가능한 일을 하는 것의 쓸쓸함]

 

1. 목회는 불가능하다.

 

2. 목회는 불가능한 일을 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설교의 불가능성을 말했다. 바르트는 설교를 말했지만, 동시에 목회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설교는 목회의 가장 큰 부분이니까.

 

3. 이제 와서 보니, 나는 목회가 무엇인지 모르고 목회자가 된 것 같다. 목회자 가정에서 태어나 목회를 생득적으로 경험했지만, 목회자가 될 즈음,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목회가 무엇인지 정말 몰랐던 것이다.

 

4. 목회를 시작하며, 나는 외숙부이신 무불달 오세종 목사님께 참을 '인'자를 선물로 써달라고 부탁드렸다.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은 인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5. 나는 삼대째 목사다. 우리 집안에 목사가 엄청 많다. 아마도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많은 목회자를 배출한 집안 일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목사에게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지, 생득적으로 안다.

 

6. 아버지의 목회를 어린 눈으로 바라보며, 나는 인내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았다. 무엇보다 부당한 일을 겪을 때마다 인내의 덕목은 큰 힘을 발휘했다. 인내는 교회를 무너지지 않게 만들었다.

 

7. 우리 아버지는 간암으로 돌아가셨다. 간암은 집안 내력이긴 하지만, 나는 아버지가 너무 참아서 간에 암이 생겨, 결국 참다참다 못해 돌아가셨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어떤 원망 같은 것은 결코 없다. 그냥 그렇다고 생각할 뿐이다.)

 

8. 나는 민수기를 좋아한다. 민수기에 보면, 모세가 힘들고 어려운 일, 무엇보다 부당한 일을 당할 때 마다 지혜롭게 대처하는 장면이 반복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목회자에게 민수기만큼 좋은 텍스트는 없다.

 

9. 목회자 집안에서 자란 생득적 경험과 민수기가 주는 지혜 때문에 나는 목회를 시작하며 '참을 인'을 선택했고, 그것을 선물로 받았다.

 

10. 그런데, 담임 목회를 20년쯤 해 본 결과, 왜 목회에 인내가 필요한지, 그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11. 목회는 불가능하다. 목회를 하면서 나를 가장 괴롭힌 것은 바로 이것이다. 목회는 불가능하다.

 

12. 그럼에도, 목회는 계속되어야만 한다. 이는 마치 버나드 쇼의 "The Show Must Go On"과 같다.

 

13. 목회는 삶을 닮았다. 그렇지 않은가? 삶은 불가능하다. 결국 아무리 발버둥쳐도 삶은 결국 죽음으로 끝난다. 목회와 삶을 닮았다. 불가능한 것이지만 그래도 계속 진행해야 하는 시지프스의 굴레와 같다.

 

14. 나는 이제 왜 목회에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 '인내'인지 알 것 같다.

 

15. 인내는 내가 처음 목회를 시작할 때 생각했던 것처럼, 어렵고 힘든 일, 무엇보다 부당한 일을 참아내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결코.

 

16. 인내는 당장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는다 하더라도 무언가 해야 할 일을 계속하는 것이다.

 

17. 목회. 사람이 사람을 돌본다는 것을 불가능한 일이다. 목회. 사람이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목회. 사람이 사람에게 '하나님'을 경험하도록 돕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목회. 사람이 사람에게 좋은 마음을 가진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목회. 사람이 사람에게 성스러워 보인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목회. 사람이 사람에게 미소를 잃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목회. 사람이 사람의 죄성을 온몸으로 껴안는 일은 불가능한 일이다.

 

18. 목회를 하면할수록 깨닫는 것은 단 하나이다. 목회는 불가능하다는 것!

 

19. 불가능한 일을 하는 사람의 고뇌는 불가능한 일을 해본 사람만 알 수 있는 것일까?

 

20. 목회는 쓸쓸하다. 불가능한 일을 해야 하는 운명 때문이다.

 

21. 그러나, 아이러니컬 하게도, 그렇기 때문에 목회만큼 아름다운 것도 없다. 목회는 세상 최고의 아이러니, 십자가를 닮았다.

 

22. 목회를 시작하며, 철없이, 참을 '인'자를 요청하고, 선물로 받았으나, 이제 돌이켜 보면, 그것은 참으로 절묘한 요청이고 선물이었다.

 

23. 지금도 나는 부당한 일을 경험하더라도 잘 참는다. 하지만  무작정 참지는 않는다. 내 목표 중 하나는 아버지처럼 참고 또 참다 간암에 걸려 죽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간 때문에 죽지 않을 것이다. 죽더라도 다른 것 때문에 죽을 것이다.

 

24. 하지만, 나는 인내한다. 목회를 처음 시작할 때와는 다르게 인내를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 인내 없이는 목회를 지속할 수 없다는 것을 뼈저리게 알기 때문이다.

 

25. 나의 목회가 당장의 변화를 가져오지 않더라도, 바로 지금, 무엇인가를 계속해서 해야 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오늘 밭을 갈지 않으면, 오늘 씨를 뿌리지 않으면, 오늘 물을 주지 않으면, 열매는 결코 거두지 못할 것이다.

 

26. 하지만, 오늘 밭을 갈면, 오늘 씨를 뿌리면, 오늘 물을 주면, 당장 열매를 얻는 것은 아니지만, '때가 되면' 열매가 있을 것을 믿는다.

 

27. 울면서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단을 거둘 것이다.

 

28. 인생은 가뜩이나 쓸쓸한데, 목회를 하는 인생이니 그 쓸쓸함이 두 배다.

 

29. 쓸쓸함은 나의 무기다. 얼마나 큰 폭발력을 지녔는지 모른다.

 

30. 시방 나는 위험한 짐승이다.

 

31. 주님께서 이 무기를 선하게 쓰시기를!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