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새로우니2020. 5. 14. 09:14

아침묵상 시편 27편 - 주님의 선하심을 보게 되리라

https://youtu.be/f0UHN038_TA


오늘은 시편 27편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열어봅니다.

 

시편 27편은 연예인급 시편이고, 보물창고 같은 시편이죠. 교회를 좀 다니신 분들은 시편 27편을 읽으면 저절로 찬양을 흥얼거리실 텐데요, 1절에서는 다윗과 요나단의 찬양이 떠오르고, 4절에서는 옹기장이의 찬양이 떠오릅니다.

 

1절은 이런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제 말이 맞죠? 문자로 읽히지 않고, 가락을 담은 찬양으로 읽히죠? 4절도 그렇습니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편은 만나면 좋은 친구같은 시이고, ‘곁에 있으면 든든한남친, 남편, 또는 장성한 아들 같은 시입니다. 시에서 굉장히 남성적인 에너지가 느껴지는데요, 아마도 전쟁 용어가 많이 쓰였기 때문 일 것입니다. 또한 아주 강력한 사랑의 에너지가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시인이 하나님을 아주 간절하게 갈망하기 때문입니다.

 

이 시편 전반에는 절박함과 간절함이 흐르고 있는데요, 사람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으나, 삶이라는 게 원래 절박하죠. 우리를 살아 있게 하는 에너지, 또는 하나님의 얼굴을 찾게 하는 에너지는 이러한 삶의 절박함에서 나오는 것이겠죠. 시에서 시인은 하나님을 매우 절박하게 찾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소리 내어 부르짖을 때에 들으시고 또한 나를 긍휼히 여기사 응답하소서”(7).

 

우리가 절박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가 절박한 심정으로 기도할 때,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구원의 손길, 도움의 손길이 없다고 생각할 때, 사람은 절박한 마음을 접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박함 심정을 멈출 수 없습니다. 우리가 절박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기도드릴 때, 하나님은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반드시 응답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시인의 절박함은 계속해서 전개되는데요,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죠. 시인은 하나님이 이렇게 하라고 하셨다고 말합니다. “너희는 내 얼굴을 찾으라!” 시인은 이 말씀에 의지하여, 계속하여,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의 얼굴을 찾습니다. 그러면서 시인은 이렇게 간구합니다. “주의 얼굴을 내게서 숨기지 마시고 주의 종을 노하여 버리지 마소서 주는 나의 도움이 되셨나이다 나의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나를 버리지 마시고 떠나지 마소서”(9). 너무너무 간절하죠. 이러한 간절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사람은 복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시편 27편에서 시인은 하나님의 사랑을 매우 극단적인 방법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10). 부모들이 자식을 버려도 된다는 뜻이 아니라, 그만큼 깊은 하나님의 사랑을 극단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일 텐데요, 이 구절을 읽으며, 부모는 오히려 하나님처럼 자녀를 더 깊이 돌보고 사랑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되는 것이겠죠.

 

제가 보기에, 이 시의 클라이맥스(가장 중요한 구절)13절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개역개정 성경은 13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내가 산 자들의 땅에서 여호와의 선하심을 보게 될 줄 확실히 믿었도다.” 너무 평범하게 번역을 했는데요, 히브리 원어에 있는 부정 접속사 룰레를 전혀 살려내지 못한 번역입니다. 그런 점에서 영어성경은 이 부분을 잘 번역해 놓았는데요, 영어성경으로 13절을 읽어보면 이렇습니다. “I would have despaired unless I had believed that I would see the goodness of the Lord in the land of the living.” 부정 접속사 ‘unless’를 써서 히브리 원어에 담긴 뜻을 잘 표현해 놓았죠. 우리 나라 말로 풀어서 번역하면 이런 뜻입니다. “산 자들의 땅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내가 믿지 않았다면, 나는 절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산 자들의 땅이란 산 자들의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땅입니다. 하나님께 속한 자가 거하는 곳, 그것을 산 자들의 땅이라고 말합니다. 시인이 절박함과 간절함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이유는 바로 산 자들의 땅에 거하기 위함 이었죠.

 

인생은 절망으로 치달을 수도 있고, 소망으로 고양될 수도 있습니다.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덤벼드는 것과 같은 세상,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을 치고 전쟁을 벌이려는 것 같은 세상,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아픔을 당하는 세상, 이런 세상에서 절망하지 않고 살아가기 란, 참으로 기적 같은 것입니다.

 

시인이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절박함과 간절함 가운데 하나님의 얼굴을 구한 이유는, 그에게 포기할 수 없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인데요, 바로, “산 자들의 땅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보게 되리라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죽음의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진실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되는데요, 그것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셨죠.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힘들이 달려들어,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예수님에게 마지막 남은 옵션은 죽음 밖에 없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이었습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은 두려워하지 않고, 무엇보다, 절망하지 않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했습니다. “아버지여, 나의 영혼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었다면,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은 절망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끝까지 신뢰했기에, 죽은 지 사흘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시편 2713. “산 자들의 땅에서 주님의 선하심을 보게 되리라는 것을 내가 믿지 않았다면, 나는 절망하고 말았을 것이다.” 잠시 머물러서, 반드시 묵상해야만 하는, 생명과도 같은 말씀입니다. 이 말씀이 우리 곁에 있는 한, 우리는 시인이 마지막 14절에서 하는 권면을 희망차게 받아들 것입니다. “너는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강하고 담대하며 여호와를 기다릴지어다.”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아멘이 용솟음 치리라 믿습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