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마다 새로우니2020. 5. 16. 07:22

아침묵상 시편 28편 - 하나님, 나, 공동체

https://youtu.be/4NS9BGML-vM


오늘은 시편 28편을 묵상하면서 하루를 열어봅니다.

 

시편 28편을 읽어보면, 악인에 대한 이러한 시인의 기도가 나옵니다.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 그들은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들의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3).

 

구밀복검(口蜜腹劍)’이라는 고사성어가 있는데요, <자치통감>당기’, ‘현종천보원년에 나오는 고사에서 유래된 성어입니다. 거기에 이런 이야기나 나오는데요, “이임보는 현명한 이를 미워하고 능력 있는 이는 질투하는 그 성정이 음험한 사람이었다. 사람들이 그를 말하길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을 품었다고 하였다”(오경웅, <시편사색> 165). ‘구밀복검’, ‘입에는 꿀이 있고, 배에는 칼을 품다라는 뜻입니다. ,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마음에는 악독이 있는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중국의 당나라 황제 현종과 양귀비의 사랑 이야기는 세간에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죠. 당 현종 때 재상을 지내며 정사를 자기 마음대로 주무르던 인물이 바로 이임보라는 사람입니다. 이임보는 당 현종의 눈과 귀를 가린 사람으로 유명한데, 그가 자기 서재에서 장고(오랜 시간 동안 생각함)를 했다면, 다음 날 어김없이 누군가 주살되었다고 합니다.

 

별 재능도 없는 사람이었는데, 재상의 자리까지 오른 이유는 그가 구밀복검에 능했기 때문이라고 하는데요, 그는 아무리 싫은 사람이 있어도 앞에서는 절대로 내색하지 않고 그를 칭찬하고 추켜세웠다고 하죠. 그리고 뒤에서 계략을 꾸며, 반드시 정적을 제거했다고 합니다. ‘구밀복검에 너무 뛰어나서, 아무도 이임보가 자신을 싫어한다고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는 자신의 눈에 조금이라도 거슬리거나, 자신보다 뛰어난 인물이 있으면, 조정에서 쫓아내거나 조정에 얼씬도 못하게 술수를 부렸다고 하는데요, 그렇다보니까, 조정은 점점 무능한 인력들로만 채워지고, 나중에 전란이 일어나자, 결국 그것을 수습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당나라 조정은 나라가 망하는 것을 막지 못했다고 합니다.

 

악인은 다른 사람이 악인이 아니라, 결국 자신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하는 사람을 일컫는 말입니다. 시편 28편에서도 시인은 이것을 경계하며, 그러한 악인을 물리쳐 주실 것을,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는 것이죠. 그러면, 왜 악인은 결국 자신도 망하고 남도 망하게 하는 악한 일을 저지를까요? 이에 대해 시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과 손으로 지으신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므로!”(5). 이것을 한자어로 목중무진재(目中無眞宰)’라고 합니다. “저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없다!”라는 뜻입니다. 악인의 눈에는 하나님이 안 보이기 때문에, 악한 일을 통해 모두 망하게 하는 것이죠.

 

중국의 학자이자 그리스도인인 송경웅이 지은 <시편사색>에 보면, 악인들의 목중무진재를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저들의 눈에는 하나님이 없다. 그러니 숨겨진 욕망이 솟구친다. 내가 해결하고 내가 판단하고 내가 악을 징벌하고 싶어하는 욕망! 자신이 해결사가 되고자 하는 욕망이다. 더 나아가 저 스스로 하나님이 되려 한다. 일순 보기에는 선한 것 같으나 지극히 위험하다!”(165).

 

이러한 악인의 묘사를 보며 우리들은 혀를 쯧쯧 차기도 하지만, 사실, 악인에 대한 이러한 본성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발현될 수 있는 위험이 있죠. ‘내가 판단하고 내가 악을 징벌하고 싶어하는 욕망! 자신이 자신의 삶에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하는 욕망!’ ‘나는 그렇지 않다는 교만을, 우리는 늘 조심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어떻게 해야, 그러한 악인의 회중에 들지 않고, 그들과 함께 멸망당하는 일을 피할 수 있을까요?

 

시편은 온통 그것을 가르쳐 주는 듯합니다. 악인은 온통 관심이 자기 자신에게 집중되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인은 온통 관심이 하나님에게 집중되죠. 또한,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이웃/공동체를 향한 관심으로 눈을 돌리게 합니다.

 

시편 28편을 면밀히 보면, 그러한 구조로 전개됩니다. 시인은 하나님에게 탄원하는 탄원시로 시작해서, 탄원 드린 것에 대하여 응답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다가, 마지막에는 공동체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하고, 하나님이 그들을 지켜주시길 간구하는 기도로 마칩니다.

 

내 눈에 지금 하나님이 들어오는지 안 들어오는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나의 기도가 누구를 향해 있는 지를 살펴보면 됩니다. 나의 기도에 온통 밖에 없다면, 그 기도는 악인의 기도와 다를 바 없는 것이죠. 그러나, 그 기도에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이 가득할 뿐 아니라, 내 주변의 이웃, 공동체를 향한 간구가 넘친다면, 나는 적어도 악인의 회중에 들어 그들과 함께 멸망당하는 자가 아닌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너무 자신의 문제에 파묻혀, 또는 자기 자신만 생각하느라,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찬양을 잃어버리지 마세요. 또한 너무 자신의 문제에 파묻혀, 그 모든 문제를 자기 자신이 해결하느라 여유가 없어, 고통당하는 이웃/공동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도록 내버려두지 마세요. 시인이 6절에서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내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심이로다라고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러니 기뻐하고 노래하며, 그 기쁨과 감사를 이웃/공동체와 함께 나누는 복된 인생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좋은 하루 되세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