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극. 아무도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비극이 아니면 사람들은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그리스의 희곡 중에서도 희극보다는 비극이 더 유명하고 재미있는 것이 그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오이디푸스 왕 같은 비극이 대표적이지요. 그렇다면 비극은 왜 연출될까요? 대부분의 경우가 욕심 때문입니다.
남아공 월드컵에서도 이런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이 아르헨티나에게 4대 1로 패배한 사건입니다. 축구 전문가들은 이 경기의 패배 원인을 감독의 전술 실패로 꼽지만, 인간의 심리 이면을 들여다 보아야 하는 목사인 제가 보기에는 이 경기의 패배 원인은 분명 욕심에 있습니다.
아르헨티나와 한국의 축구 실력은 차이가 납니다. 아르헨티나에는 세계적인 선수가 즐비합니다. 세계 최고의 공격수 메시를 비롯해 이과인, 테베스, 베론 등, 이름만 들어도 엄지 손가락을 추켜 세우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들이 즐비합니다. 객관적인 전력에서 한국은 아르헨티나를 따라 잡을 수 없습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이런 점을 겸허하게 수용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변을 일으켜 보겠다고 하는 욕심이 이러한 점을 간과하게 만들었습니다.
더군다나 24년 전, 한국 팀의 허정무 감독과 아르헨티나 팀의 마라도나 감독의 악연이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데 방해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24년 전 멕시코 월드컵 당시 허정무 선수는 월드컵에 처음 출전하여 아르헨티나 대표팀 선수로 나왔던, 세계 최고의 공격수였던 마라도나 선수를 전담 마크했었습니다. 그 당시를 회고하면서 마라도나 감독은 한국 선수가 태권도 축구를 했다고 비아냥댔고, 허정무 감독은 그건 태권도가 아니라 축구였다고 심리전을 펼쳤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허정무 감독에게 오기가 발동했던 것 같습니다. 남아공 월드컵 첫 번째 경기였던 그리스 전에서 상당히 좋은 경기를 펼쳐 그리스를 이긴 선수들도 한 번 해 볼만하다고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기가 과했고, 자신감이 과했던 것이죠. 박지성 선수도 ‘아르헨티나에게 패배라는 충격을 안겨주겠다’고 말한 것을 보면 말이죠.
한국은 아르헨티나를 이겨보려는 욕심이 앞섰습니다. 욕심이 앞서면 상황 판단이 흐려지는 법입니다. 한국 팀의 욕심의 결과는 4대 1, 대패였습니다. 비극입니다. 한국 팀은 아르헨티나 팀에게 한 수 배우겠다는 겸허한 마음으로 승패와 상관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경기에 임했어야 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경기에 임했다면 오히려 좋은 결과를 얻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기겠다는 지나친 욕심은 대패의 비극만 안겨주었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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