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히 5:12). 예수를 믿은 지 꽤 오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어린 아이의 초보 신앙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히브리서 공동체(교회)를 향한 질타입니다.
초보 신앙에 머물러 있는 사람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히 5:13)요, 아직도 선악을 구별하지 못하여 선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자입니다. 이는 존재의 차원이기도 하지만, 기능의 차원이기도 합니다. 존재 자체가 아직도 어린 아이의 인격 수준에 머문 사람은 몸이 커도 여전히 다른 사람이 자신을 뒤치다꺼리 하게 만듭니다. 기능의 차원에서도 선한 일을 하지 못합니다. 뭔가 창조적인 일, 남에게 힘이 되어 주고 아름다움을 생산해 내는 일을 하지 못합니다. 초보 신앙에 머물러 있는 사람의 치명적인 약점은 하나님께 받은 약속, 기업을 끝까지 지켜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을 약속의 땅으로 받았습니다. 그들이 가나안 땅에 입성했을 때 그 땅은 그들에게 영원한 기업으로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기업을 영원한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들은 가나안 땅의 원주민들과 치열한 전쟁을 벌여야만 했습니다. 그야말로 두려움과 떨림으로 그들의 구원(약속, 기업)을 이룬 것이죠. 신앙 생활에서 믿음의 성장이 꼭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믿음의 성장이 없으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받은 기업(구원)을 지켜내지 못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오해를 합니다. ‘한 번 믿고 나면 구원을 절대 잃어버리지 않는다.’ 이건 정말 큰 오해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경계 안에 들어온 사람들은 절대 구원을 잃어버릴 염려가 없겠지만, 배교와 같은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의 경계 밖으로 애써 떨어져 나간 사람에게는 구원이 머물러 있을 수 없는 법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은총을 입었다가 시간이 지나 대놓고 그 은총에서 떨어져 나간 사람들, 즉 배교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하는”(히 6:6)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곳곳에서 믿는 이들에게 권면하고 있는 것처럼,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면서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하나님의 도(말씀)를 배워야 하며, 구원을 기업으로 받은 자답게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성장하지 않으면 오히려 부끄러움을 당할 수 있다는 말씀에 긴장하고, 믿음의 진보를 이루는 교회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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