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김혜자씨가 낸 책의 제목입니다.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 월드비전을 통해 자원봉사 하면서 겪은 일들을 풀어놓은 에세이집 입니다. 제목이 정말 마음에 듭니다. 그 무엇이든 폭력은 용서 받을 수 없다는 말입니다.

 

힘 차이가 발생하는 곳, 대등하지 못한 관계 속에서 강한 쪽이 약한 쪽을 일방적으로 지배하려는 모든 행위를 폭력이라고 합니다. 폭력에는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외적 폭력과 내적 폭력입니다. 외적 폭력은 드러나 있는 폭력, 저항할 수 있는 폭력을 가리킵니다. 내적 폭력은 합법적인 폭력, 그래서 저항하기 힘든 폭력을 가리킵니다. 둘 중 어느 폭력이 더 나쁠까요? 물론, 합법적인 폭력이 더 나쁩니다. 이 폭력은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또는 드러나더라도 모든 사람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기 때문에 폭력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어디다가 하소연 하기도 힘듭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폭력이지만 합법적이기 때문에 어떻게 손 쓸 수 없는 것이 바로 전쟁입니다. 전쟁은 국가의 이름으로 일어나기 때문에 어느 개인이 손 쓸 수 없습니다. 일단 전쟁이라는 폭력이 가해지면 모든 사람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됩니다. 대한민국 청소년들도 교육이라는 미명 하에 폭력을 당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교육의 폭력 앞에서 할 수 있는 일은 두 가지입니다. 적응해서 가해지는 폭력을 참고 이겨내든지, 아니면 스스로 목숨을 끊던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청소년들을 우리는 함부로 나약한 이들이라고 손가락질 하지만,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함부로 손가락질 했던 일이 부끄러워질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폭력이었습니다. 굉장히 합법적인 폭력이었습니다. 로마 당국은 예수님을 국가반란죄라는 합법적인 죄목을 씌워 폭력을 가했고,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죄라는 합법적인 죄목을 씌워 폭력을 가했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합법적인 상태로 폭력을 당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분입니다. 합법적인 폭력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이제 좀 손에 잡히십니까?

 

불법적이든, 합법적이든, 모든 종류의 폭력은 이 땅에서 사라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러한 폭력에 희생되신 이유는 이 땅에 편만한 모든 종류의 폭력을 십자가에 처형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십자가에서 정죄 받고 처형 받은 것은 예수님이 아니라 이 세상의 온갖 폭력()이었다는 말입니다. 이 사실만 제대로 알고 있어도, 우리는 함부로 폭력을 저지르지 못할 겁니다. 폭력이라는 말과 행동이 우리 삶에 발 들여놓을 틈이 없어질 겁니다. 폭력을 저지르는 순간 우리는 심판 받는 것이 되니까요.

 

폭언, 폭행 등 우리가 알게 모르게 저지르는 폭력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두 번 죽이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 덕분에 모든 폭력()에서 구원 받은 자라면, 우리가 어떻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겠습니까? 꽃으로도 때리지 마십시오. 제발.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