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 아침에 조깅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몸에서는 땀과 함께 독소가 빠져나가고 마음에 스며 있는 못된 생각조차 그 땀과 함께 제거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뜀뛰면서 하는 생각이 가장 맑은 것 같습니다. 생각이 맑아져서 그럴까요? 오늘따라 들려오는 매미 소리가 달라 보입니다. 여름 내 온 천지를 가득 메우던 일상적인 소리가 오늘은 다르게 들려옵니다. 다르게 들려온 매미 소리를 시()로 옮겨 봤습니다. 제목은 매미 소리입니다.

 

매미 소리를 시끄럽다 하지 말라 / 그대는 매미의 심정을 아는가? / 매미 소리는 매미의 정열이다 / 그대도 매미처럼 인생이 짧다고 생각해 보라 / 그대 안에 정열이 움틀 댈 것이다 / 그대의 목소리는 그 정열을 담아낼 것이다 / 그대의 목소리에는 온 우주가 담길 것이다

 

하루 종일 틈만 나면 울어대는 매미 소리를 듣고 우리는 별 신경 안 쓰든지 아니면 시끄러워서 못살겠다고 합니다. 이는 매미 소리가 하찮아서 그렇게 들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삶을 얼마나 하찮게 살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나 살기 바빠서 매미 소리를 들을 여유조차 없다거나, 나 살기 바빠서 매미 소리 듣는 것조차도 부담스럽다는 뜻입니다. 이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우리 스스로도 모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우리 마음에 스며 있는 못된 생각의 독소가 우리의 마음을 마비시켰기 때문입니다.

 

눈이 없어서 여름의 푸르름을 못 보는 것이 아닙니다. 귀가 없어서 새들의 재잘거림을 듣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순히 삶이 바빠서 매미 소리가 귀에 안 들어오거나 시끄럽게 느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이 헛된 것에 정신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여름이 끝나갑니다. 어느 시인이 말한 것처럼, “초록은 나날이 제 돌계단을 내려갑니다.” 곧 있으면 낙엽이 허공을 나뒹굴 것입니다. 하늘은 더 높고 푸르러지겠죠. 그야말로 하늘이 높아지고 말()조차 살이 붙는 풍요의 계절이 올 것입니다. 여름은 나날이 제 돌계단을 내려가고, 가을은 나날이 제 돌계단을 올라옵니다. 내려가는 여름을 배웅 나가고 올라오는 가을을 마중 나가야겠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헛된 것에 빼앗겨 있으면 배웅도 마중도 모두 못 나가겠지요. 오늘 저녁, 시간 내서 석양을 바라보며 뜀뛰기라도 한 번 해보시지요. 마음이 환해질지 누가 압니까? 마음이 맑아야 보는 것이 보이고 듣는 것이 들리는 법입니다. 문득 우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생각나는군요. “너희가 보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도다”(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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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