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 선친께서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다녀오신 적이 있습니다. 성지 순례 다녀오시면서 유럽 쪽도 몇 나라 거쳐 오셨는데, 그 때 매우 낯선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유럽에서는 물을 사먹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페트병에 물을 넣어 파는데 1불 정도 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때만해도 한국에서는 물을 사먹는다는 것이 매우 낯선 광경이었습니다. 천지에 깔린 게 물인데 물을 왜 사먹어야 하는지, 어린 나이에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물을 사먹는 것은 일상이 되었습니다. 오히려 물을 사먹지 않으면 안 될 정도입니다. 먹을 만할 물, 식수가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어릴 적 들로 산으로 강으로 다니면서 뛰놀던 시절에 물이라는 것은 그냥 그 자리에서 언제나 철철 넘치며 존재하는 것이었습니다. 물 속에는 분명 물고기가 살았고, 가재도 살았고, 민물 새우도 살았습니다. 모래무지, 방게도 빼놓을 수 없죠. 소금쟁이도요. 그런데 지금은 시냇물이나 계곡물이나 모두 말라버려서 어릴 적 잡으면서 놀았던 생명체들을 더 이상 찾아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물이 마르고 사라져가는 동시에 생명도 물과 함께 마르고 사라진 것입니다.

 

이처럼 물과 생명은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물이 넘치는 곳에는 생명도 넘치지만, 물이 없는 곳에는 생명도 없습니다. 지금은 지구 전체가 부족한 물 때문에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생명이 위태로워졌다는 뜻입니다. 옛날에 ‘물쓰듯 돈을 쓴다’는 표현은 돈을 펑펑 낭비한다는 뜻을 가리켰지만, 이제 ‘물쓰듯 돈을 쓴다’는 말은 쫄쫄 아껴 쓴다는 뜻으로 바뀌어야 할 지경입니다. 생명과 물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말입니다.

래서 성경에 보면 예수님을 일컬어 "생명의 물, 생수"라고 합니다(요한복음 4). 예수님을 물에 비유한 것에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곧 생명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생명이라는 것을 가볍게 생각해서 그렇지, 생각하면 할수록 손에 잘 잡히지 않는 것이 생명입니다. 그만큼 생명이란 깊은 묵상을 필요로 한다는 뜻입니다. 그나마 생명이라는 것을 손에 좀 잡히게 하기 위해서 우리의 인체 생명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는 물에 예수님을 비유한 것이지, 예수님은 물보다도 더 절대적으로 우리의 생명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증거합니다. 물은 마셔도 다시 목마르지만, 예수님이라는 물을 마시면 영원히 목마르지 않다’고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물이십니다. 내 안에 예수가 부족하면 내 생명은 위태로운 것이고, 내 안에 예수가 충만하면 내 생명은 온전한 것입니다. 이게 무슨 말씀인지 좀 깨달아지시는지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