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려주일을 보내며

 

종려주일(Palm Sunday)입니다. 부활절 전 주일이기도 합니다. 부활절 전, 예수님은 종려주일에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한 날을 종려주일로 부른 것, 예수님이 죽음에서 부활하신 것을 부활절로 부른 것은, 모두 그 사건이 일어난 후의 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돌아보며 그를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이 붙인 이름입니다. 종려주일이라고 이름을 붙인 이유는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할 때 사람들이 손에 종려나무가지를 들고 ‘호산나’를 외쳤기 때문입니다. 호산나의 뜻은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입니다. 이들이 바라는 구원은 무엇이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이스라엘은 오랜 세월 동안 여러 제국에 지배를 받아왔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나라가 망하고(BC 587년), 그 이후에 나타난 페르시아, 그리스, 그리고 로마 제국에 의해 순차적으로 지배를 당했습니다. 알렉산더 대왕이 죽은 후 사분오열된 그리스 제국은 지역 안배를 통해서 권력을 나누어 가졌는데, 그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을 다스린 제국을 ‘셀레우코스 제국’이라 부릅니다. 그 중에 안티오코스 4세 에피파네스라는 황제가 유대인의 성전에 우상을 배치하여 성전을 더럽힌 사건이 있었는데, 그 사건이 발단이 되어 유대인들이 혁명을 일으킵니다. 그것이 바로 BC 164년에 마카비가 일으킨, 그 유명한 마카비 혁명입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때의 혁명을 기념하기 위하여 ‘하누카’를 지키고 있습니다. 12월이 되면, 기독교인들은 ‘성탄절’(Christmas)를 지키지만, 유대인들은 ‘하누카’(Hanuka)를 지킵니다.

 

하지만 마카비 혁명을 통한 유대인의 독립도 오래 못 가고, 로마 제국에 의해서 또 지배 상태에 들어가게 되죠. 그래서 기원전 2세기와 1세기를 지나는 동안 유대인들에게는 ‘메시아 사상’이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하나님이 보낸 ‘메시아’가 와서 제국을 몰아내고 자신들을 구원해 줄 거라는 사상이 유대인들 사이에는 팽배했고, ‘메시아의 도래’에 대한 기대가 가득했습니다. 이는 마치 일제시대에 저항시인 이육사가 <광야>라는 시를 통해서 ‘초인’이 도래하여 조선을 구원해 줄 것을 기대했던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다시 천고(千古)의 뒤에 / 백마(白馬) 타고 오는 초인(超人)이 있어 / 이 광야에서 목놓아 부르게 하리라.” 그래서 그 당시 유대인들은 자녀를 낳으면 ‘Jesus’라고 붙이는 게 유행이었습니다. Jesus는 여호수아(Joshua)와 같은 뜻을 지닌 이름인데, 그 뜻은 ‘여호와께서 구원하신다!’입니다. 그러니까, Jesus에는 이미 ‘메시아’의 의미가 들어가 있는 것이죠.

 

이런 일련의 역사적 사건을 보면,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산나’를 외치며 예수님을 환영했던 것은 그들이 예수님에게 어떠한 구원을 원했는지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로마 제국을 이스라엘 땅에서 몰아내고 마카비처럼 혁명을 이루어 나라를 되찾고, 이스라엘의 민족성과 종교를 지켜줄 것으로 기대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긴급한, 현실적인 구원에 대한 기대였습니다. 그들의 소망대로 예수님의 구원이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더 깊은 차원에서 그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주셨던 것이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현실에서 제국을 몰아내고 주권을 되찾았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는 오래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종려주일을 맞아 주님을 맞이하며 ‘호산나’를 외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호산나’는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는 말입니다. 아주 깊은 간절함이 담긴 말입니다. 우리도 우리의 삶을 들여다보면, 당장 구원받아야 할 것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나 자신의 문제, 가족의 문제, 직장의 문제, 또는 사회적 문제 등,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일단 호산나를 외치며, 그러한 문제들이 해결되고 평안을 되찾을 수 있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주님께 간구하는 것은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거기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궁극적인 구원에 대해서도 다시 한 번 깊은 묵상을 하는 시간이 되면 좋겠습니다.

 

종려주일입니다. 종려나무가 이스라엘에서는 흔한 나무라 그 나뭇가지를 꺾어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했던 것이겠죠. 만약 한국에서 이 일이 발생했다면, 한국 산천에 흔한 개나리나 진달래를 꺾어서 예수님을 환영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손에 잡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간절한 마음으로 ‘호산나’를 외칠 때,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는 그 길에 우리는 무엇을 놓아드릴 수 있을까요? 아마도, 교회 뜰에 핀 유채꽃 같은 것을 꺾어서 그 길에 놓아드리면 어떨까요? 아무튼, 우리의 일상에 예수 그리스도를 모시는 일이 많았으면 좋겠습니다. 간절한 마음으로,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를 외치면서, 우리의 삶의 문제를 주님께 말씀드리면 좋겠습니다. 호산나는 종려주일에만 외치는 특별한 구호가 아니라, 그냥 우리의 일상에서 흔하게 외치는 구호가 되면 좋겠습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