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결핍이다
죄는 결핍이다. 결핍된 존재는 자기 상승을 꿈꾼다. 그래서 판넨베르크는 죄를 일컬어 '자기 집중'이라 불렀다.
결핍된 존재는 자기에게 집중하게 된다. 자기 집중은 주변의 다른 것들을 모두 상대화시키고 그것들을 자기 자신의 상승을 위한 도구로 전락시킨다. 그래서 죄는 필연적으로 배제와 폭력을 불러 일으킬 수밖에 없다.
죄의 권세에 눌린 자들은 인정투쟁에 끊임없이 휘말릴 수 밖에 없다. 죄를 짓게 하는 권세를 지닌 사탄(마귀)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아닌 세상 나라의 가치를 제시하며 그것을 통해서 존재의 결핍을 메울 수 있다고 부추긴다. 속임수에 능한 사탄과 속임수에 쉽게 넘어가는 죄된 인간이 만들어 내는 세상은 온통 결핍을 메우기 위한 투쟁으로 가득 차 있다.
거룩이란 완전성을 의미한다. 결핍된 존재는 결코 거룩할 수 없다. 완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결핍에서 벗어나 거룩(완전한 전체)에 이를 수 있을까?
인간이 절망하는 이유는 사탄이 제시하는 것을 쫒아가다 그것으로 존재의 결핍을 메우지 못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절망에서 돌아서지 못한다. 너무 멀리 와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은 가련하다.
존재의 투쟁은 결핍을 메우기 위한 투쟁이다. 존재는 결핍을 견디지 못한다. 어떻게든 결핍을 메워보려 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는다. 그래서 존재는 하루가 멀다하고 방황한다.
존재의 결핍을 극복한 상태가 부활이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결핍된 존재가 그토록 염원하던 결핍의 극복의 길을 그가 제시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결핍된 존재가 부활의 신비를 잘 알아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부활은 깊숙히 감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 비밀을 경험한 증인들(사도들/제자들)이 조바심을 내며 열심히 그 비밀을 알리고 다녔으나,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을 보니, 그 비밀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알리기에는 역부족인 듯 싶다.
그래서, 교회가 할 일이 아직 산더미다. 그런데, 증인들의 모임인 교회는 산더미 같은 일을 잊은 채, 잠 자고 있던지, 놀고 있던지, 아니면 나쁜 짓 하느라 산더미 같은 일을 처리하고 있지 못하는 듯 싶다.
세상은 어둡고, 할일은 많다. 나의 동지는 누구인가. 나는 누구의 동지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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