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의 중요성

 

무소유. 불교 승려 법정이 주장해서 유명해진 개념이지만, 이것은 기독교에서도 매우 중요한 개념이다.

 

예수도 동일한 이야기를 했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6:31, 32). 또한 예수는 보물을 땅에 쌓아두지 말고 하늘에 쌓으라고 말했다. 하나님과 재물은 동시에 섬길수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야기는 단순히 재물의 부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본질을 꿰뚫는 심오한 뜻을 가지고 있다. 인간에게 가장 위험한 것은 자기 집중, 또는 자기 초월이다. 이것을 교만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이것은 인간이 자신의 실존을 거부하고 자기 자신을 과장하고 확대해서 자신의 분수를 넘어서려는 시도이다. 기독교는 이것을 ''라고 칭한다.

 

'자기'를 벗어나는 일은 매우 위험하다. '자기'를 벗어나는 일은 불가능하다. 인간은 불가능한 일을 하려다 절망에 빠진다. 키에르케고르는 이 절망을'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 불렀다.

 

인간이 '자기 확대'를 위해 자연적(naturally)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소유'를 늘리는 일이다. 인간은 소유를 통해서 자기 확대를 시도한다. 가진 게 많으면 '자기'를 벗어나 '위대한 존재'가 되어 있는 것으로 착각한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자기 집중과 상대방에 대한 착취나 배제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 자기 확대를 시도하는 인간은 필연적으로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 자기의 생명 뿐 아니라 다른 이의 생명까지도 파괴하고 마는 것이다.

 

무소유를 검소한 삶이라든지 욕심을 초월한 삶 정도로 도덕화시키면 안 된다. 무소유는 인간 존재, 생명을 적극적으로 보호하고자 하는 투쟁이다. 그리고 인간에게는 '자기' 안에서 만족하며 살줄 아는 겸손이 필요하다.

 

자신이 지니고 있는 '소유' 때문에 '자기 확대'가 일어났다고 생각이 들면, 살고자 하는 자는 그 '소유'를 아낌없이 내다버려야 한다. 생명이 소유보다 귀하기 때문이다. 생명이 곧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12:20-21).


'파루시아를 살다(신학묵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인간의 고통  (0) 2019.02.20
라인홀드 니버  (0) 2019.02.20
죄는 결핍이다  (0) 2019.02.20
광야와 교회  (0) 2019.02.20
두 증인 이야기  (0) 2019.02.20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