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는 어떻게 오는가?

 

인류는 세 가지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전쟁, 기근, 죽음이 그것이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요, 기근과 죽음을 정복하기 위한 분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류가 해결하지 못한 이 세 가지 문제는 인간의 존엄성을 무참히 짓밟는 것이기도 하다. 전쟁처럼, 굶어 죽는 것처럼, 비참한 일이 어디 있나.

 

성경조차도 전쟁 이야기로 가득 차 있다. 창세기의 족장들의 이야기도 전쟁을 빼놓고는 이야기 진행이 안 될 정도다. 출애굽 이야기도 전쟁 이야기이고, 구약 이야기의 백미는 가나안 정복 전쟁 이야기다. 구약은 하나님을 전쟁의 신(divine warrior)로 묘사하고 있고, 가나안 정복 전쟁은 여호와 하나님의 의지에서 비롯된 것처럼 기록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구약성경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은 기독교이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는 전쟁도 불사하는 믿음을 지는 게 당연해 보인다.

 

기독교인들은 왜 이렇게 호전적일까? 우리가 주님으로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나라-하나님 나라를 이 땅에 가져오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기독교인들은 왜 평화를 사랑하지 못하고 전쟁을 일삼을까?

 

기독교 역사를 보면, 전쟁은 대개 종교전쟁이었다. 그렇다고 기독교인들은 초기 때부터 있어왔던 것은 아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그 당시 사회에서 매우 마이너리티였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핍박을 당하는 입장이었다. 그러다, 콘스탄티노플 황제에 의해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로마의 국교가 되었을 때부터 기독교는 힘을 가지게 되었고, 그 이후 기독교의 역사는 (종교) 전쟁의 역사가 되었다.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종교 전쟁은 대략 세 개다. 첫째는 중세에 있었던 십자군 전쟁이다. 이때 기독교 국가들은 이슬람 국가들과 예루살렘을 놓아두고 극심한 전쟁을 벌였다. 둘째는 종교개혁 이후에 있었던 30년 전쟁(1618 - 1648)이다. 이 전쟁은 가톨릭을 지지하는 국가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국가들 간에 발생한 전쟁있었다. 셋째, (이것은 논란의 여지가 있지만) 독일의 나치가 일으킨 홀로코스트 학살도 일종의 종교 전쟁이다. 유대인 또는 유대교에 대한 탄압이었기 때문이다.

 

전쟁이 발생하는 원인은 대개 패권 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것이다. 종교 전쟁의 원인도 별단 다르지 않다. 한 종교의 대 사회적 패권 또는 기득권 싸움이 종교 전쟁을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이 된다. 그리고 패권 또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전쟁이 발생한다는 것은 이미 한 사회에서 패권을 자치하고 있던 권력 또는 종교가 힘을 잃어버렸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한병철이 <권력이란 무엇인가>에서 밝히고 있듯이, “물리적 폭력의 사용은 권력의 적용이 아니라, 권력이 파산했다는 표현이다”(29). 권력이란 타자 속에서 자기 자신이 그대로 존재할 수 있도록 하는 힘인데, 권력이 파산하면 타자는 자기 자신이 그대로 존재하는 상태가 되지 않기 때문에, 타자에게 폭력을 써서라고 타자를 움직이려 한다면, 그것은 이미 권력이 파산했다는 증거일 뿐이다.

 

한병철은 권력을 의미와 관련해서 설명하는데, 그는 말하기를 권력은 의미 있음의 빛 속에서 등장할 때에야 비로소 안정성을 얻는다고 한다.(52). 이런 측면에서 기독교가 일으킨 전쟁의 이면을 들여다 보면, 기독교가 그 사회에서 의미를 상실했을 때 전쟁이 발생했다. 그리고, 그러한 현상은 지금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몇 년 전 한국에서 발생한 불상훼손사건(20161월 경북 김천 개운사)’도 마찬가지다. 그 사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그것은 한 기독교인의 일탈이라기 보다는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서 의미를 상실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다. 기독교가 한국 사회에서 모든 사람들에게 의미 있는 종교라면 굳이 그러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불상을 훼손해서라도 의미를 발견하고자 한 기독교()은 한국 사회에서 기독교가 얼마나 의미 없는 종교가 되어가고 있는지, 민낯을 보여준 부끄러운 일이다.

 

평화는 어떻게 오는가? 종교 간 평화에 온 힘을 쏟고 있는 가톨릭 신부 출신의 학자 한스 큉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종교 간의 대화 없이 종교 간의 평화가 있을 수 없으며, 종교 간의 평화 없이 세계 평화 또한 있을 수 없다.” 맞는 말이다. 평화를 위해서는 종교 간에 적극적인 대화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나는 이 보다 더 근본적인 것이 평화를 가져온다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듯이, 각자의 종교가 각자 지니고 있는 의미를 온전히 내어 보일 때, 평화는 선물로 오는 것이라 생각한다. ‘의미를 잃으면 체제나 삶은 초조해진다. 불안해진다. 그 초조와 불안은 평화를 깨며, 폭력을 통해서라도 의미를 다시 찾고 싶어 한다. 그러므로,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가장 근본적인 방법은 의미를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런 뜻에서,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의미와 기독교인 됨의 의미를 찾기 위해서 더 노력해야 할 것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