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룩한 길로 다니게 된다는 것의 현대적 의미

(이사야 35)

 

성경은 그 시대의 문제(problems)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그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그 문제를 '약자'의 관점에서 바라보며, 약자의 생명을 구하고 보호하는 것에 관심을 둔다.

 

가령 이사야서를 보면, 이사야 시대의 문제는 지정학적 국제정치였다. 앗시리아와 바벨론, 그리고 애굽 사이에 낀 약소국 이스라엘이 그들과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살아남을까에 대한 문제가 적나라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스라엘의 고관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는 관점에서만 문제를 풀어나가려고 애굽에 붙었다 앗시리아(앗수르)에 붙었다 하면서 그들의 비위를 맞추는 데 혈안이었다.

 

물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서는 재물이 필요했고, 그 재물은 당연히 국민들로부터 걷은 세금(?)으로 충당했다. 결국, 국제정치의 문제 속에서 피부로 와 닿게 피해를 보고 고통을 당하는 사람들은 가난한 국민들이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러한 관리들의 탐욕과 무능을 책망했으며,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을 주문했다. 여호와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이사야 35장을 근거로 그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면, 여호와께로 돌아온다는 것은 여호와의 왕권을 인정하고, 그 왕권이 드러난 새시대를 여는 것이다.

 

이사야는 그러한 시대를 맹인이 눈을 뜨고, 못 듣는 사람이 듣게 되는 것을 통해서, 저는 자가 뛰고, 말 못하는 자가 유창하게 노래하게 되는 것을 통해서 묘사한다.

 

다른 말로 정리하자면, 여호와의 왕권이 도래하는 시대는 사람들의 감각적 기능과 행동적 기능이 회복이 되어, 어려운 문제를 타결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할지, 무슨 행동을 해야할지 깨닫게 될 뿐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 행동할 줄 아는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은 탐욕에 눌려 생명을 멸망시킨다. 탐욕에 눌려 있는 자는 영혼이 황폐되어 있는 것이고, 영혼의 황폐는 바깥으로 드러나 약자와 자연을 착취하며 거기에 폭력을 저질러 이웃과 자연을 황폐하게 만든다.

 

반대로, 황폐한 사람의 마음이 풍요로워지면, 이웃과 자연의 황폐함도 풍요로워진다. 여호와께 돌아오는 일, 여호와의 왕권을 선포하고 그 나라가 임하는 일은 결국 우리 자신과 이웃, 그리고 모든 생명이 깃들어 사는 자연을 살리는 거룩한 일이다.

 

이사야는 그렇게 될때, 우리가 거룩한 길로 다니게 된다고 선포한다. 거룩한 길로 다니게 되는 것의 현대적 의미는 결국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풍성하게 하기 위한 우리의 감각 기능과 행동 기능을 회복하는 것이다.

 

우리가 선지자의 경고대로 감각 기능과 행동 기능을 회복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여전히 탐욕의 노예가 되어 이웃과 자연에게 폭력을 저지르는 무뢰한으로 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지 않고, 여호와께로 돌아온다면, 성령께서는 신비한 방식으로 우리의 감각 기능과 행동 기능을 회복시키셔서 우리를 통하여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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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