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은 어디에서 오는가?

 

어느 책에서 한국인은 왜 행복하지 못하는가?’라는 글을 읽었다. 각 민족마다, 각 나라마다 행복의 기준이나 척도가 다르겠지만, 한국인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는 너무 외적인 것에서 행복을 찾으려는 지나친 물질주의적 사고때문이라는 연구 결과를 보았다.

 

2010년 한 조사에서 이런 질문을 했다.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목표는 물질적 풍요이다.” 이 질문에 라고 응답한 한국 사람의 비율이 전 세계에서 가장 높게 나왔다. 그리고 어느 때 가장 행복할 것 같나라는 질문에 복권 당첨되었을 때라는 응답을 내놓은 대학생들이 부지기수이다. , 한국인은 부자=행복이라는 공식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행복에 대한 착각에 불과하다. 지난 30년간 행복 연구로 누적된 자료를 보면, 인생의 여러 조건 즉, , 학력, 지능, 성별, 나이 등은 행복의 개인차를 10-15퍼센트 정도밖에 예측하지 못한다고 한다. 한국인은 행복의 10퍼센트와 관련된 조건을 얻으려고 인생 90퍼센트의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더 큰 문제는 에 대한 욕심은 자기 충만감이라는 우쭐한 기분을 들게 하여, 자연스럽게 타인에 대한 신뢰도 수준을 낮춘다는 것이다. 돈이 있으면 너희가 없어도 나 혼자 살 수 있어!”라는 마음을 준다는 것이다. 물질적 풍요는 알게 모르게 이러한 자기 충만감을 사람들의 마음에 심어 넣어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고 배려하지 못하고 서로에 대한 신뢰나 의존도를 낮추어 대인관계에 어려움을 겪게 한다.

 

이게 왜 문제냐면, 인간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가장 큰 요인은 타인에 대한 애정이기 때문이다. 타인에 대한 애정이 있는 사람, 다른 말로 해서 안정된 가정생활마음 편히 속마음을 애기하는 가까운 친구가 있을 때 인간은 가장 행복을 느낀다는 것이다. 그러나, ‘에 대한 욕심에 사로 잡혀 있고, 돈이 있다는 자기 충만감은 그러한 애정의 수준을 떨어뜨린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보면,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한국인, 그리고 부자가 되는 욕망에 사로잡혀 있는 한국인이 행복하지 못한 것은 당연한 결과인 것 같다.

 

행복은 아주 사소한 것에서 만족을 느낄 수 있을 때 온다. UCLA의 알렌 파르두치 교수의 범위 빈도 이론(range-frequency theory)에 의하면, 극단적인 경험을 한 번 겪으면 감정이 반응하는 기준선이 변해 이후 어지간한 일에는 감흥을 느끼지 못한다. 예를 들어, 천만불(100억상당) 짜리 복권에 당첨된 극단적인 경험을 한 번 경험한 사람은 그 이후 어지간한 일에는 별 감흥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인생이 불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복하려면, 우리는 사소한 것들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일과를 마치고 나만의 시간에 TV 시청하는 것, 럭셔리한 쇼핑센터가 아닌 TJ Maxx같은 곳에서 쇼핑하는 것, 바쁜 와중에서도 틈을 내서 친구들과 식사시간을 갖는 것, 주말에 동료들과 어울려 운동을 즐기는 것 등, 어떻게 보면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들 같은 것들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왜냐하면, 그 소소한 일상이 결국은 우리의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주는 가장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개인적으로 예배 시간에 많은 이들이 못 나와도 마음에 불평이 없다. 개척의 극단적인 경험때문이다. 오래 전(2006710), 조지아에 교회를 개척할 때 교회의 창립일을 710일로 정한 이유는 그 날이 컬럼버스 조지아에서 첫 예배를 드린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첫 예배라는 게 정말 초라하기 그지 없었다. 집사람하고 나하고 단 둘이서이곳이 예배 처소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어느 교회의 주차장에서 (그 교회의 예배당이 아니다. 주차장 한 구석이었다.) 쭈그리고 앉아 예배를 드린 날이었다.

 

100명 나오는 교회, 또는 1000명 나오는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으면, 예배 시간에 많은 이들이 참석하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마음에 불평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집사람과 단 둘이서 주차장 구석에서 개척을 시작한 극단적인 경험덕분에, 예배에 우리 가족 외에 단 한 사람만이 함께 있어도 행복과 감사가 넘친다.

 

행복은 이런 것 아니겠는가. 아주아주 작은 것에서도 감동하고 감사할 수 있는 마음의, 또는 존재의 겸손함을 지니는 것! 우리는 우리가 숨 쉬고 사는 것 자체 만으로도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런 존재의 겸손을 지닌 사람이 가장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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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