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믿음

 

라인홀드 니버는 종말에 관한 두 비유에 대하여 말하면서,

최후의 심판 비유가 펠라기우스적이라면

포도원 일꾼의 품삯 비유는 아우구스티누스적이라고 평한다.

ㅡ 김재성 <예수의 비유에 나타난 개성화의 동기> 중에서

 

어떤 대중가요에 이런 가사가 있다.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왠지 별다를 것 같지 않아요!" (김동률,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법'). 인생이란 그렇다. 우는 것과 웃는 것은 구별되는 행동 같지만, 인생이라는 큰 차원에서 보면, 우는 것이나 웃는 것이나 별로 차이가 없다. 울어도 인생은 그냥 그렇게 끝나고, 웃어도 인생은 그냥 그렇게 끝난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선함이나 악함은 별반 다르지 않다. 좀 더 도덕적으로 사나, 아니면 좀 더 악하게 사나, 하나님 앞에서는 별 차이가 없다. 우리는 기를 쓰고 다른 이와 같지 아니하려고 선하게 살거나 도덕적으로 살려 들지만, 또는 다른 이들과 차별되는 어떠한 것을 성취하려고 애쓰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그 모든 것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

 

이것은 아우구스티누스 신앙의 전통에 서 있는 루터의 종교개혁에서 명확하게 드러난다. 루터가 말하는 '오직 믿음'은 구원의 조건으로 믿음이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다. 우리는 믿음을 율법과 대비시키며, 또는 행위와 대비시키며 믿음을 강조한다. 믿음이 없이는 구원을 못 받는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믿음을 증명하는 신앙생활을 강요, 또는 강조한다. 결국 믿음은 행위로 전락된다.

 

루터가 말하는 '오직 믿음'은 은총론의 표현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우리에게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은총으로만 가능하다는 뜻이다. 우리가 구원을 위해서 쌓는 자기 성취나, 자기 의, 또는 도덕 등은 우리가 불의라며 손가락질 하는 사람들의 부족함과 전혀 다를 바 없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사람이나 불의한 사람이나 모두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은총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다.

 

인간은 아무리 도덕적이어도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악을 생산해 낸다. 우리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싸 놓은 똥을 치워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 없다면, 우리는 결국 파멸에 이르고 말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은총이 없으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실존의 고백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