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lloween is just around the corner

[할로윈]

 

할로윈 때가 되면 참 재밌는 현상이 벌어진다. 할로윈을 지키면 안 된다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저항이 인터넷을 떠돈다. 마치 그들은 할로윈 때 나타나는 '유령/귀신'들 같다.

 

할로윈을 제대로 알자며, 그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매우 조악하다. 켈트족의 문화를 운운하며, 할로윈이 마치 '인신제사'를 조장하는 양, 그래서 할로윈을 지키면 참된 기독교인이 아닌 양, 할로윈을 지키지 않는 것을 통해서 기독교의 정체성을 지켜내야 하는 양 떠든다.

 

나는 실로 궁금하다. 그렇게 조악한 논리로 할로윈을 통해 자신들의 기독교 정체성을 드러내고 싶은 '유령'같은 무리들이 누구인지를!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기독교 절기 중에서 가장 지키면 안 되는 절기는 성탄절과 부활절이다. 예수님이 언제 태어나셨는지, 알려진 바 없다. 예수님이 언제 부활하셨는지, 알려진 바 없다. 성경은 그저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와 부활 이야기를 '신앙고백적'으로 전할 뿐이다.

 

성탄절과 부활절은 기독교가 발전하면서 신학화 작업을 통해, 그리고 기독교가 뿌리내리고 있는 곳(로마/유럽)의 문화를 통해 제정되었을 뿐이다.

 

기독교의 복음은 성육신의 복음이지, 탈육신의 복음이 아니다. 기독교의 메시지는 언제나 그 시대와 그 지역의 문화에 성육신 할 수밖에 없다. 기독교의 메시지가 떠도는 유령이 되지 않게 하려면, 기독교의 메시지는 부단히 그 시대와 그 지역의 '일상의 언어'로 전달되어야 한다. 그 일상의 언어가 바로 문화이다.

 

할로윈이라고 하는 말 자체가 Saint Evening이라는 뜻을 이미 담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가 켈트족에게 전파되었을 때, 농사의 풍성한 결실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은 그들의 전통에 복음의 메시지가 담겼다. 그래서 농사의 성공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유령들(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을 그들은 받아들였다.

 

만성절(All Saints Day)은 켈트족의 할로윈 문화를 통해 탄생했다. 켈트족의 할로윈 문화가 없었다면 물론 다른 문화를 통해서 만성절이 탄생할 수도 있었겠지만, 어쨌든 만성절은 켈트족의 문화를 통해 탄생되었다.

 

신화의 세계 속에 살았던 고대 사람들에게 농사를 짓고 그 풍성한 수확을 간절한 마음으로 기대하는 것은 당연한 마음이다. 아이를 임신한 뒤 순산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엄마의 마음과 다를 바 없다. 그러한 간절한 마음이 담긴 풍습이 할로윈이다.

 

21세기에 할로윈이 귀신을 물리치는 주술이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어디 있는가. 할로윈은 그저 자본에 이용당하고 있을 뿐이다. 할로윈 때 팔려나가는 할로윈 물품은 1조원이 넘는다. 실로 어마어마한 시장이다.

 

온갖 탐욕에 물들어 맘몬의 유혹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는 작금의 기독교가 할로윈을 '귀신의 축제'라며 거부하는 것은 실로 코미디 같은 현상이다. 할로윈의 이교도 풍습에 자신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지 않겠다는 것일 뿐, 탐욕에 물든 기독교인들은 십자가를 바라보며 자신의 탐욕을 얼마나 채우려 기도하는가.

 

보수 개신교인들은 할로윈을 더욱더 폄하하기 바쁘다. 시장의 자유를 그토록 수호하기 위하여 사회의 보수세력과 야합을 일삼는 보수 개신교 세력이 할로윈을 거부하는 것은 정신분열적 행동일 뿐이다.

 

10 31일은 개신교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날이다. 만성절 전야제이기도 하지만, 종교개혁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복음을 일상의 언어로 바꾸는 작업이었다. 그래서 그는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까지 했다.

 

할로윈은 기독교인들이 지키면 큰 일 나는 마귀의 행사가 아니라, 기독교의 메시지를 '일상의 언어(문화)'로 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다. 그 기회를 놓치고, 할로윈 문화를 배척만 한다면, 할로윈 문화를 즐기는 일반 대중은 자신들의 일상의 언어로 복음을 들을 기회를 또 상실하고 마는 것이다.

 

할로윈이 기독교 전통에서 기독교의 성인(Saint)을 기리는 날인 것을 안다면, 할로윈에 세상 사람들은 귀신 분장을 하여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보낼 때, 기독교인들은 성경 속의 인물들(성인들) 복장을 하여 그들과 어울리며 복음을 전할 기회를 삼는 게 더 현명한 전략일 것이다.

 

할로윈(만성절) 11 1일인 이유는 히브리서 11 1~40절에 근거해서 만성절을 제정했기 때문이다. 히브리서 11장은 '믿음 장'으로 알려져 있으며, 거기에는 '믿음으로 살다간' 기독교의 수많은 '성인들'이 등장한다.

 

할로윈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서구 문명의 영향 아래 살아가는 사람들은 할로윈의 파도를 피할 수 없다. 파도는 피해서 피해지는 게 아니라 타고 넘어야 피할 수 있다. 우리는 지금 삶의 자리에서 어떻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가. 일상의 언어를 사용하는가, 아니면 기독교인들만 알아들을 수 있는 은어를 사용하는가. 할로윈이 복음을 일상의 언어로 바꾸는 좋은 기회가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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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