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사한 뉴스

 

미국에서는 원래 이번주부터 합법적 거주를 원하지만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는 이민자들에 대한 합법적 거주를 거부할 수 있는 행정령을 시행하려 했다. 그러나 지난 주 미국 법원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그러한 행정령에 제동을 걸었다. 다행히도 합법적 거주를 원하는, 그러나 국가 재정에 부담을 줄 수 있는 이민자들이 강제로 쫓겨나는 일이 없게 되었다.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트럼프 행정부는 합법적 거주를 원하지만 그들이 합법적으로 거주를 할 경우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게 될 것이라고 예상하는 사람들을 쫓아내기 위한 논리로 다음과 같은 주장을 내세운다. “The Trump administration said expanding the list of services that would disqualify a person would help guarantee that the immigrants granted residency are self-sufficient. 트럼프 행정부는 자격을 박탈할 수 있는 공공 서비스 목록을 늘리는 것은 거주를 허가 받은 이민자들이 자급자족할 수 있음을 보장하는 것을 도와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AP News).

 

트럼프 정부의 논리는 완전히 기득권의 논리이다. 그리고 이민자들끼리 서로를 적지게 만드는 화법을 구사한다. 예를 들어, 현재 저소득층에게 부여되고 있는 ‘medi-cal’ 서비스(공공의료서비스)에 대한 지급을 허가 받은 이민자들에게만 제공하면, 그들의 의료서비스가 더 좋아질 거라는 논리이다. 어떻게 보면 솔깃한 제안이지만, 조금 생각해 보면, 법적인 보호 망 안에 들어오지 못하는 사람은 인간 취급하지 않는 악한 생각이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다. 미국만큼 이민자에게 문호를 활짝 개방하는 나라도 드물다. 그러나 요즘 미국은 매우 보수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국가 재정의 부담 때문이다. 국가 재정의 부담 중 하나는 불법 이민자에 대한 복지와 합법적 거주를 희망하고, 합법적으로 체류하고 있지만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는 방식으로 체류하는 사람들이라고 트럼프 정부는 생각한다.

 

이 논리가 기득권자들에게는 먹히는 전략일 수 있다. 그리고 이민자들의 분열을 획책할 수 있는 논리이기도 하다. 사회적 기반과 재정 기반이 약한 이민자들의 미국에서의 삶은 고단할 수밖에 없다. a민자들에게는 경제적 고통이 늘 따른다. 그러나 트럼프 정부의 그러한 논리와 정책은 기반을 어느 정도 잡은 이민자들과 이제 기반을 잡아가는 저소득층 이민자들 사이에 골이 생기게 하고, 결국 저소득층 이민자들의 삶의 터전을 완전히 빼앗아버리는 잔인한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국가 재정을 축 내는 너희들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더 힘든 거야! 너희들만 없으면 우리의 삶을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할 텐데! 그러니 너희들에게는 더 이상 복지 혜택의 기회를 줄 수 없어!’ 이 얼마나 잔인한 말인가.

 

누군가를 희생시켜 내 삶이 좀 더 풍요롭고 행복해진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러한 풍요로움과 행복은 눈 먼 풍요로움과 행복일 수밖에 없다. 남의 고통에 눈감고, 그들을 딛고 올라선 풍요로움과 행복은 불의 그 자체다.

 

우리는 자신의 것을 좀 더 내려놓고, 더불어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는 사회를 꿈꿔야 한다. 인간의 야만성의 발효는 처음엔 자기 자신을 살리는 좋은 방편 같지만, 결국 어느 순간에 그 야만성은 자기 자신을 향하는 무서운 발톱이 된다. 조금이라도 더 강한 자가 조금이라도 더 약한 자를 밟고 올라서 쟁취한 풍요와 행복은 아무런 삶의 의미를 주지 못한다. 남의 것을 빼앗아 풍요와 행복을 누리는 것보다 자신의 것을 내어주며 함께 풍요롭고 행복한 삶이 의미 있는 삶이고, 그것도 어렵다면 그냥 함께 굶어 죽는 것이 오히려 아름다운 삶이다.

 

트럼프 정부의 정책에 제동을 건 미국 법원은 이렇게 말했다. “But the judge says the changes would immediately put migrants who followed the law at risk for economic insecurity, health instability, denial of citizenship, and potential deportation. 하지만 판사는 이러한 변화들은 법을 따른 이민자들을 경제적 불안정, 건강상 불안정, 시민권 거부와 잠재적 국외 추방의 위험에 곧바로 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AP News). 트럼프 정부의 잘못된 정책과 인간의 야만성을 잠재운 미국 사법부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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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