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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25 기네스 팰트로(Gwyneth Paltrow)의 소신발언과 교회

[기네스 팰트로(Gwyneth Paltrow)의 소신발언과 교회]

 

기네스 팰트로가 마블 히어로물에서 떠난 뒤, 미국의 토크쇼에 나와서 다음과 같이 소신 발언을 했다.

 

"요즘 영화계는 질보다는 양에 더 중점을 두고 있다. 독창적으로 느껴지는 좋은 영화들도 많다. 슈퍼히어로 영화 전반적으로 본다면 큰 압박이 있다.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다 보니 때때로 영화의 작품성이나 독창성 등 진짜 관점이 방해를 받는 경우가 있다. 독립영화가 블록버스터 대작에 비해 예술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해관계가 적을 때 예술의 다양성이 더 커진다. 자신의 진정한 목소리를 표현하고 원하는 방식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영화들이 더 큰 울림을 줄 것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을 '상품'을 만들어 팔아 매출을 올려야 살 수 있는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 '가능한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려고 노력'하는 일은 필수적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점 때문에 모든 생태계가 망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들이 인식을 잘 하지 못해서 그렇지, 교회도 복음도 '상품'이 된 지 오래됐다. 교회도 복음도 하나의 '상품'으로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않으면 '구매'의 대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를 돌아보면, 기네스 팰트로가 영화계에 대하여 비판하는 것과 똑같은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 교회도 질보다 양에 더 중점을 둔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것이 더 좋은 교회이고 더 부흥한 것이라고 말한다. 가능한 많은 사람에게 다가서려 하다보니 교회는 '작품성이나 독창성'을 잃어버린다. 일부러 작품성과 독창성을 포기한다. 대중적이어야 한다는 압박 때문이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에게 선택을 받고 '부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복음의 진짜 관점이 방해를 받는다.

 

기네스 팰트로의 다음 발언은 이 시대에 교회가 사는 길에 대한 제언과 일치한다. "독립영화가 블록버스터 대작에 비해 예술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 이해관계가 적을 때 예술의 다양성이 더 커진다."

 

블록버스터 대작은 요즘 우리가 '대형교회'라 부르는 것과 같은 성격의 것이다. 우리는 아주 큰 실수를 범하고 있는데, 대형교회를 기준으로 교회의 정체성을 구분하는 것이다. 우리는 대형교회를 기준으로, 사이즈가 작으면, '작은 교회'라고 부른다. 어떤 교회는 자신들은 형편없는 대형교회와 같지 않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건강한'이라는 수식어를 붙인다. '건강한 작은 교회'.

 

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일인가. 작은 교회라니. 작다는 것은 '크다'라는 다른 기준이 있어야 성립되는 것인데, 교회의 기준이 '대형교회'이다보니,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게 '작은 교회'라는 용어가 남발하고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이 생긴 것이다. '교회는 두 종류의 교회만 존재한다. 대형교회와 대형교회가 되고 싶은 교회. 목사는 두 종류의 목사만 존재한다. 대형교회 목사와 대형교회 목사가 되고 싶은 목사.' 이 모두, 교회가 자본주의에 포획되었다는 뜻이다. 

 

독립영화가 예술의 다양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이해관계가 적을 때 예술의 다양성이 커진다는 기네스 팰트로의 말은 영화계에만 적용되는 말이 아니다. 교회의 현실에도 절실하게 필요한 말이다. 자본주의의 가장 치명적인 단점은 다양성을 말살시킨다는 것이다. 일례로 유행은 개성의 표현인 것 같지만 결국 같은 상품을 구매하도록 유도하여 매출을 극대화시키는 상술에 불과하다. 이러한 현대 자본주의 사회의 병폐를 콜린 건턴은 자신의 삼위일체론인 <하나 셋 여럿>에서 밝힌 바 있다.

 

교회가 위기를 맞이한 이유는 다양성이 형편없이 망가졌기 때문이다. 모두 자본주의의 기획에 당한 것이다. 모든 교회가 '대형교회'를 지향하는 어처구니없는 목적성을 가지고 있다보니, 복음은 대중들의 구미에 맞는 것으로 양념이 버무려지고 팔린다. 그래야 상품화된 교회와 복음이 일반 대중들의 구매력을 자극하여 선택 받기 때문이다.

 

이 시대의 교회가 위기에서 탈출하여 교회도 살리고 세상도 살리는 방법은 자본주의의 기획에 저항하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기획은 다양성의 말살이다. 교회가 블록버스터 대작이 되는 것을 포기하고 작품성과 독창성이 살아있는 독립영화를 만드는 것이다. 그리하여 교회의 생태계에 다양성을 구축하는 것이다. 이해관계를 최소화하여 다양성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나는 교회에서 '작은 교회'라는 용어는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회는 그 앞에 자신들의 고유한 성격/성품을 드러내는 이름만 있으면 된다. 교회 앞에 '작은'이라는 것이 붙는다는 것은 결국 교회의 기준이 '대형교회'라는 뜻밖에 없는 것이다. 교회 사이즈가 어떻게 교회의 기준이 될 수 있는가. 너무 천박한 생각이다.

 

작고 건강한 교회를 세우지 말라. 건강으로 따지면 대형교회를 따라갈 수 있나? 가난한 자가 부자들의 건강을 따라갈 수 있나? 작품성과 독창성이 있는 교회를 세우라. 이해관계가 적은 교회를 세우라. 그래야 복음이 '상품'으로 팔리지 않고, 이 시대를 향한 '메시지'가 될 것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