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을 탄핵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
1. 역사의 숭고함을 망가뜨림
2. 나쁜 선례를 만들면 안 됨
역사는 숭고하다. 역사가 숭고한 이유는 '비극' 때문이다. 비극은 정의를 이루어가다 발생한 슬픔이 역사에 박힌 상흔이다. 대한민국의 근대사는 비극으로 가득 차 있다. 일제시대의 저항, 독재에 대한 저항, 민주화 운동 등, 새시대를 열어가려는 정의의 행진 안에서 슬픈 일이 많이 발생했다. 그 슬픔이 한국 근대사를 비극으로 물들였고,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숭고하다. 숭고함은 비극의 아름다움이다. 그 숭고함 때문에 우리는 비극을 진리로 받아들이며, 기억하고, 그 길을 따라가려고 발걸음을 뗀다.
윤석열이 행한 '계엄 사태'는 바로 이러한 역사의 숭고함에 아주 큰 흠집을 낸 것이다. 비극적인 숭고한 역사를 희극적인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역사의 선배들이 쌓아놓은 숭고함을 무너뜨리고, 역사를 웃음거리로 만들었다. 국민들이 모아준 권력을 사사롭게 씀으로 인해 정의를 무너뜨렸다. 이것은 절대 용납해서는 안 될 죄악이다.
윤석열을 반드시 탄핵해야 하는 또다른 이유는, 만약 이번에 탄핵을 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간다면, 아주 나쁜, 최악의 선례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현재,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이 임기 말년에 행한 아들 헌터 바이든을 사면한 일은 여야 가릴 것 없이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여당에서도 말하는 비판의 목소리는 이것이 ‘나쁜 선례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가진 사면권을 통해 자기의 측근을 사면하고 대통령 자리에서 퇴임하는 것은 후임 대통령들에게 아주 나쁜 선례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육아를 할 때 부모가 가장 신경 써야 할 일은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는 것이다. 아이가 잘못을 했을 때 부모는 반드시 훈육을 해야 한다. 그래야 아이는 자기가 방금 행한 일이 나쁜 일이라는 것을 인지한다. 그렇지 않고, 그냥 넘어가면, 아이는 ‘이렇게 해도 되는 구나’하면서 또다시 그 나쁜 일을 반복하게 된다. 좋게 넘어가는 게 능사가 아니다. 나쁜 선례를 만드는 일은 나중에 나쁜 일을 한 사람에게는 좋은 핑계거리가 된다.
한국교회가 망가진 이유는 한 가지로 규명될 수 없지만, 그래도, 가장 큰 이유 중 하는 ‘세습’이다. 광림교회 김선도 목사가 지탄을 받는 이유는 그가 ‘나쁜 선례’를 남겼기 때문이다. 여러 가지 훌륭한 일을 많이 했어도, 결국 퇴임 때 ‘나쁜 선례’, 즉 ‘세습’을 했기 때문에 지탄을 받는 것이다. 한국의 대표적인 대형교회 중 하나인 광림교회에서 ‘세습’이라는 ‘나쁜 선례’를 남긴 것 때문에 그 이후 감리회를 비롯한 타교단의 대형교회들은 그 ‘나쁜 선례’를 따라 세습을 자행했다. 그 나쁜 선례를 막아내지 못한 감리회는 그 이후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다. 보수화, 그리고 사사화가 너무 심해 감리회의 웨슬리 정신을 잃어버렸다.
지금 국민의힘에서는 윤석열 탄핵을 반대한다는 당론을 정했고, 기껏해야 임기를 탄축하는 헌법개정을 통해 윤석열의 조기 퇴진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가는듯하다. 그렇게 되면, 윤석열은 말되 안되는 엄청난 범죄를 국가와 국민들 앞에서 저질러 놓고, 퇴임 후에 대통령이 받게 되는 모든 혜택과 의전을 손해 없이 받게 된다. 이것은 정말 ‘나쁜 선례’를 만드는 일이다. 이후에 정치적 궁지에 몰린 대통령이 있다면, 그는 분명 윤석열을 참고 삼아 ‘계엄령’을 남발할 것이다. 그렇게 해도, 자기 밥그릇에 아무런 손해가 없을 거라는 ‘나쁜 선례’가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은 반드시 탄핵되어야 한다. 역사의 숭고함에 큰 흠집을 낸 죄를 묻고, 그리고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되어야 한다. 땀과 피로 세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손쉽게 훼손될 수 있는 게 아니다. 역사는 가장 장엄한 교훈이다. 후대에게 우리가 물려줄 수 있는 것은 역사의 장엄한 교훈 외에 무엇이 있겠는가. 숭고한 역사를 훼손하는 자는 반드시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 ‘나쁜 선례’는 나쁜 통치자를 또 만들어내는 법이다. 역사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이 역사적 사건 앞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한 번만 더 생각해 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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