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은 하나의 철학이다

 

최근에 읽은 책 중에 『10권을 읽고 1000권의 효과를 얻는 책 읽기 기술』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언뜻 보면 그냥 자기계발 책 같은데, 내용은 그렇지 않습니다. 서문에서 저자가 ‘이 책은 단순히 실용서가 아니다’라는 것을 밝히기도 하죠. “그렇기에 이 책이 그저 단순한 실용서로 읽힐 것이 아니라 읽기에 대한 생각을 묻는 아주 가벼운 철학서로서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희망한다”(9쪽).

 

이 책은 ‘다독’이 미덕이 된 우리 시대의 독서 풍경을 되돌아보며 교정해 주는 책입니다. 다독(책을 많이 읽는 것)만이 독서의 미덕이 아니라, 책을 적게 읽는 것도 얼마든지 삶에 큰 의미를 준다는 것이죠. 책의 제목처럼, 천 권의 독서보다 열 권의 독서가 인생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천 권의 독서를 했지만 독서를 많이 했을 뿐 거기에서 남는 게 없다는 정말 그럴 것입니다. 그러나 열 권의 독서를 했어도 그 독서에서 많은 것을 배우고 익힌다면 인생은 달라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저자는 ‘소독(少讀/적게 읽기)-심독(心讀)-탐독(探讀)-숙독(熟讀)’할 것을 권합니다.

 

요즘 ‘독서모임’이다 ‘인문학 공부’다 ‘뭐’다 해서 책 읽는 모임이 많습니다. 독서를 통해서 인생역전을 꿈꾸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인문학 열풍은 실제로 인문학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게 아니라, 인문학 공부를 하면 창의력을 키울 수 있고, 그것이 좋은 직장을 얻는 데 도움이 되고, 수입을 늘리는 데 도움이 된다는 생각 때문에 생겨난 열풍입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책을 ‘욕망’합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욕망에 있어, 책은 성숙의 대상이 아니라 성과의 수단인 것이다”(20쪽).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요? ‘나’는 왜 책을 읽고 있습니까? (물론 책을 잘 안 읽으시는 분들에게 이러한 질문은 별 의미가 없겠습니다만) 독서는 성과의 수단인가요, 아니면 성숙의 대상인가요? 독서는 참 좋은 것이고, 원래 독서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불리며 인간을 성숙하게 만들어 주는 인생의 동반자였는데, 어느새, 우리가 사는 시대는 독서를 성과의 수단, 즉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킨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에 ‘책을 읽는다’는 행위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죠.

 

이 책에서 읽은 문장 중에서 가장 마음에 남는 것은 다음 문장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여유를 가지고 나를 돌아볼 시간이 필요하다. 인생을 엉망으로 만드는 원인은 결핍이 아니라 과잉 때문이다. 느리게 걷는다 해서 도착이 늦어지는 것은 아니다”(106쪽).

 

정말 그렇죠. 우리가 사는 시대는 과잉의 시대입니다. 과잉 때문에 우리의 인생도, 우리의 지구도 망가졌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전히 과잉을 좆아서 삽니다. 무엇이든지 비워내기 보다, 무엇이든지 채우고 넘쳐야 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 보니, 불안은 끝없습니다. 과잉은 결코 채울 수 없는 신기루이기 때문입니다.

 

과잉의 시대에 결핍은 부족함이나 불안함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의 철학입니다. 결핍되었다고, 부족하다고 덜 행복하거나 인생이 망가지지 않습니다. 과잉이 아니라 결핍을 지향하는 것,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케노시스’라고 합니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7-8). 기독교의 구원은 결핍을 통해서 왔습니다. 결코 과잉을 통해서 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과잉의 시대에 결핍을 지향하는 것은 하나의 철학이자, 그리스도인에게는 하나의 신앙입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