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유익

 

개미핥기

 

풀고 싶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답이 두렵기에

개미 떼처럼 바글바글 끓는 문제들

개미에 시달리지 않고

쫓기지 않고, 개미를 미워하지 않고

그러기 위해 나는 날름날름

개미를 삼킨다

위장(胃腸)의 일로 넘겨버린다

그래도 날이면 날마다 여전히 끊는 개미 떼

나는 또다시 날름날름

개미는 나의 양식

입속이고 뱃속이고 따끔따금 뜨끔뜨끔

 

(황인숙 시집 <못다 한 사랑이 너무 많아서>에서)

 

삶을 괴롭히는 문제들을 풀지 않고 넘겨버리니까 그렇게 속이 아픈 거겠죠. 그렇다고 삶을 괴롭히는 그 문제들과 씨름하느라 인생을 허비하기에도 아깝습니다. 인생은 짧은데, 문제들과 씨름하다가 언제 인생을 기쁘고 즐겁게 보낼 수 있을까요.

 

“풀고 싶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 답은 두렵기에”라는 문장에서 마음이 머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들을 많이 만납니다. 문제를 풀고 싶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죠. 그 문제를 풀고 나면 나의 인생이 어떻게 변할지 모른다는, 그 두려움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그냥 문제를 묻어두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문장을 보면서 기도에 대하여 다시 생각해 봅니다. 기도란 무엇일까요? 기도는 문제를 묻어두는 행위가 아니라, 문제를 푸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풀어가는 과정이 독특합니다. 기도는 문제를 풀되, 그 문제에 인생이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는 소망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 없고 알 수 없으니,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그 문제를 맡기는 행위입니다.

 

기도의 유익은 뭐니뭐니 해도, ‘맡기는 것’에 있습니다. 문제를 주님께 맡기면, 그 문제는 우리의 미래를 열어주지 막아서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자의 삶은 ‘형통’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이죠. 그러나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마음이 열려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를 통해 우리의 문제를 주님께 ‘맡길 때’, 우리의 미래는 어떠한 방식으로 펼쳐질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우리는 믿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 우리의 미래를 선하고 아름답게 만들어 주실 것을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