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열어주세요

 

나희덕 시인의 시 중에 <나를 열어주세요>라는 시가 있습니다. 한 번 천천히 읽어 보세요.

 

옆구리에 열쇠구멍이 있을 거에요.

찾아보세요. 예, 거기에

열쇠를 꽂아주세요.

아니면 태엽이라도 감아주세요.

여기 계속 서 있는 건

아무래도 너무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몇 걸음이라도 걸어야 살 것 같아요.

열쇠를 찾을 수 없다고요?

당신의 길고 가느다란 손가락이 있잖아요.

손가락만큼 좋은 열쇠는 드물죠.

때로는 붓이 되기도 하고 칼이 되기도 하는 손,

지문의 소용돌이를

열쇠구멍의 어둠에 가만히 대보세요.

예, 드디어 열렸군요.

이제 구멍 밖으로 걸어갈 수 있겠네요.

태엽을 넉넉히 감아주세요.

염려하지 마세요. 곧 돌아올 테니까.

내 구두에는 스프링이 달려 있어

통, 통, 튀어 올랐다가도 이내 가라앉고 말지요.

혹시 돌아오지 않는다면

눈먼 둘부리에 걸려 넘어진 줄 아세요.

당신의 인형이라는 것도 잊은 채

땅에 코를 박고 허둥거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다시 일으켜줄 어떤 손을 기다리면서.

 

(나희덕 시집 <말들이 돌아오는 시간>에서)

 

인형이 말을 하는 듯합니다. 누군가 태엽을 감아주지 않아 그냥 그 자리에 계속 머물고 있는 인형입니다. 움직이지 않고 그곳에 계속 머물러 있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지루하고 답답합니다. 그래서 인형은 누군가 태엽을 감아주어 머물러 있던 자리에서 움직여 다른 곳으로 가고 싶어합니다. “여기 계속 서 있는 건 / 아무래도 너무 힘든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몇 걸음이라도 걸어야 살 것 같아요.”

 

우리도 인생을 살면서 한 가지 일을 오랫동안 하다 보면, 지루함과 답답함을 느낍니다. 삶이 권태로울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도 인형처럼 상상합니다. 뭔가 다른 일을 하고 싶고, 어딘가 다른 곳으로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 같은 것 말이죠. 인생은 기본적으로 지루하고 답답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늘 ‘기분전환’을 필요로 합니다.

 

인형의 바람대로 누군가(물론 인형의 주인이겠지만요) 태엽을 감아줍니다. 이제 움직일 수 있게 된 인형은 어디론가 발걸음을 옮깁니다. 그런데 그게 참 쉽지 않습니다. 얼마 못 가서 돌부리에 걸려 넘어지고 맙니다. 땅에 코를 박고 허둥거리는 인형은 누군가 자기를 구원해 주기를 갈망합니다.

 

우리는 지루해 하고 답답해 하면서 일탈을 꿈꿉니다. 그런데 그게 생각처럼 우리의 삶을 구원해 주는 것은 아닙니다. 차라리 우리는 지루하고 답답한 일상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게 더 좋습니다. 그런 순간이 바로, 내가 열리는 순간이겠죠. 일상에 나를 열 때, 그 일상에 존재하는 하나님의 무한한 은총을 맛보게 될 테니까요.

 

일상이 답답하고 지루하다면, 잠시 이렇게 기도해 보세요. “주님, 나를 열어주세요!”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