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교회로 가는 길]

 

8. 함께 증언하기

 

"우리는 토지를 공공의 재산으로 만들어야 한다. We must make land common property." 미국의 정치경제학자 헨리 조지(Henry George)가 그의 저서 『진보와 빈곤』(Progress and Poverty)에서 주장한 사상입니다. 이것을 ‘토지공개념’이라고 부릅니다. 19세기 후반 미국과 유럽에서 유행을 이끌었던 정치경제학적인 용어입니다. 사유 재산 제도가 극에 달한 현재의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거의 통용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자본주의가 뿌리는 내려가고 있는 시점에 이러한 ‘토지공개념’이 사회적으로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 신기합니다.

 

사실 ‘토지공개념’은 레위기에서 좀 더 강력한 형태로 제시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레위기 25장 23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토지를 영구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것임이라 너희는 거류민이요 동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이것은 헨리 조지가 제시한 ‘토지공개념’보다 훨씬 더 강력한 공개념입니다. 헨리 조지가 말한 토지공개념은 정치와 경제의 차원에서 균등한 이익의 분배를 위한 조치이지만, 레위기에서 말하는 ‘토지공개념’은 땅에 대한 개념을 신학화 합니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땅은 피조물의 소유가 아니라 창조물의 소유입니다. 땅과 같은 피조물로서 인간은 땅을 소유할 권리와 능력이 없습니다.

 

따지고 보면, 기후변화의 위기를 맞닥뜨린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이 땅을 마치 자기의 소유물처럼 마음대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만약, 성경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선포가 인간의 역사를 이끌었다면 인간은 기후변화의 위기를 맞닥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기후변화의 문제는 도덕적인 문제를 넘어서 신앙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아니, 기후변화는 근본적으로 신앙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의 땅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마음대로 착취한 죄의 문제입니다. 좀 더 과격하게 표현하자면, 기후변화는 하나님에 대하여 반역한 결과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는 죄는 이처럼 필히 어려움을 만나게 됩니다.

 

『기후교회』에서 짐 안탈은 “공동체 행동이 우리를 두려움에서 해방시킨다”라고 말합니다. 사유 재산 제도가 극에 달한 현재 자본주의 체제에서 사유 재산 제도에 대하여 회개하고 부정하는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것을 선포하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더군다나 이러한 일은 결코 혼자서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공동체의 행동’이 중요한 것이죠. 함께 증언할 때 두려움에서 벗어나 담대하게 외칠 수 있는 것이죠. 우리는 우리 시대에 횡행하는 불의한 일들에 대항하여 시민불복종 운동을 통해서 불의를 바로잡으려 했던 ‘소로, 간디, 도로시 데이, 랍비 헤쉘, 마틴 루터 킹 목사’ 등이 행한 공적인 행동을 예외적인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도덕적 용기를 칭송하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그들의 예외적인 행동을 우리의 삶에서 저만큼 멀리 두려고 합니다. 짐 안탈은 도덕적 행동이 대세를 이루려면 시민불복종 운동 같은 예외적 행동에 참여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일에 그리스도인이 앞장선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두려움’이라는 감정은 유쾌한 것은 아니지만 때로는 큰 쓸모를 지니고 있습니다. 짐 안탈 목사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들이 파괴될 것이라는 두려움은 행동을 위한 강력하 촉매다”라고 말합니다(기후교회, 269쪽). 1960, 70년대 미국에서 환경운동의 촉매가 된 것은 레이첼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이라는 책입니다. 그 책에서 레이첼은 우리가 잃게 될, 사랑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들을 전합니다. 그 책을 읽은 사람들은 사랑하는 것을 잃게 될까봐 두려워하기 시작했고, 그것은 곧 환경운동의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현재, 우리가 처한 기후위기는 레이첼이 유발한 두려움보다 훨씬 큰 두려움을 유발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때보다 덜 두려워하는 듯합니다. 그만큼 우리가 그동안 사랑하는 것들을 많이 잃어버린 탓도 있고, 요즘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는지조차 분간하지 못하고 살아가는 탓도 있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사는 세상은 환경적으로도 정서적으로도 메마른 세상입니다.

 

『기후교회』에 짐 안탈이 제시하는 사고의 전환은 기후변화에 대처해야 하는 우리 시대의 사람들에게 큰 도움을 준다. 그는 빌 맥키븐이 이룬 환경운동의 변화를 소개하며, 예전에는 기후변화가 소비자 편에 끼치는 영향에 초점을 두었다면, 이제는 기후변화의 공급자에게 초점을 두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한 사고의 전환이다. 소비자 편에서 아무리 환경보호를 위해서 노력을 해도 기후변화의 공급자가 지구 파괴를 멈추지 않는다면 기후위기는 결코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공급자에게 초점을 두는 방향은 우선 개인과 기관들에게 화석연료 회사에 투하자는 것을 철회할 것을 요구하는 일부터 시작하도록 독려한다. 주식을 소유하는 것은 단지 돈을 벌려는 것만 아니라 그 회사의 주식을 소유함으로써 그 회사의 활동을 승인하는 것을 의미한다. (기후교회, 270쪽) 기후변화를 유발하는 회사의 주식을 팔아치우거나 사지 않는 행동은 그 회사가 행하는 활동들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나타내는 것이다.

 

또한 짐 안탈은 수탁자(fiduciary)의 책임에 대한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수탁자란 다른 이의 재산을 대신 관리해 주는 개인 또는 단체를 일컫는 말이다. 증권 회사 같은 수탁자는 고객들의 투자금을 맡아 고객 대신 주식에 투자하여 이익을 극대화하여 다시 나누어 주는 일을 한다. 그러나 짐 안탈은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위기를 생각할 때 이러한 일반적인 개념을 벗어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수탁자들의 도덕은 화폐 이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지구환경을 헤치는 기업들에게 투자하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시장자본주의 체제에서 자연환경은 ‘외부효과’이다. 이익 창출의 고려 대상이 아니다. 예를 들어, 석유회사들은 석유를 땅에서 추출하면서 망치는 자연환경에 대한 비용을 전혀 지불하지 않는다.

 

이러한 시장자본주의 체제에서 발생하고 있는 ‘외부효과’ 문제는 신앙의 세계에서도 동일하게 반복되고 있다. (보수) 기독교 신앙의 가장 큰 문제점 중 하나는 ‘외부효과’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내가 구원받으면 그만이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 외부적인 것은 전혀 고려되지 않는다. 큰 집, 큰 자동차, 안락한 삶, 이런 것들이 구원의 증거라면, 이러한 삶을 위해서 희생되는 ‘외부효과들(자연이 망가지는 일)’은 완전 무시될 수밖에 없다. 시장자본주의 체에서 우리가 누리는 부의 혜택은 대개 외부효과들을 무시한 것에서 오는 열매들이다.

 

“오직 성경을 잘못 이해하는 것만이 토지에 대한 인간의 지배와 통제를 정당화한다”(기후교회, 278쪽). 정말 그렇다. 성경은 말한다.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그토록 성경공부를 많이 하고 성경을 중요시하면서도 정작 토지(땅)에 대한 우리의 지배와 통제를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고, 토지를 사적으로 많이 가지고 있으면 하나님께 복 받은 것이라 생각한다.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강력한 첫 걸음은 땅에 대한 새로운 관계를 ‘성경적으로’ 형성하는 것이다. 땅은 우리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땅은 누구도 소유할 수 없다. 교회의 땅을 공동의 것으로 바꾸는 일을 할 때 교회의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진정성을 얻을 것이다. 교회 재산의 사유화는 교회를 무너뜨리는 최악의 길일 뿐만 아니라, “땅은 나의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반란이고, 공공선을 헤치는 부도덕한 일이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로서 우리는 함께 이것을 증언할 수 있는가. “땅은 하나님의 것이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