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는 결국 정치와 경제의 문제: 전가하지 말고 스스로 감당하는 삶

 

지난 2019년부터 우리는 '기후변화' 문제를 공부하며 고민해왔습니다. 처음에는 기독교 창조론과 기후변화의 문제가 어떻게 연관되어 있고, 왜 기독교인이 기후변화 문제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함께 공부했죠.

 

팬데믹의 긴 터널을 지나면서, 작년부터 우리는 '기후변화 프로젝트: 돌보는 사람들'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본격적으로 기후변화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습니다. 관련된 책을 함께 열심히 읽으며 발제하고 토론하고 기도합니다.

 

기후변화의 문제를 파보면 결국 그 뒤에는 정치와 경제의 문제가 있습니다. 표면적으로는 기후변화의 위기를 경험하고 있지만, 심층적으로 들어가면 정치와 경제 체제가 기후변화 위기를 유발시킨 원인이죠. 특별히 자본주의 체제는 기후변화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습니다.

 

근대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시대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본주의라는 경제체제와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 아래서 풍요를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체제가 결국 인류의 멸망을 가져온다면, 우리는 이 체제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기후변화는 결국 정치와 경제의 문제를 돌아보게 합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과 신학이 정치와 경제의 영역 속에서 사유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고 있는 정치와 경제의 영역이 생명으로 그 방향을 돌리게 할 수 있는 힘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소에 접할 기회가 별로 없어서 그렇지, 기후변화에 대한 공부를 하다 보면 깜짝 놀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불의하고 불평등한지를요. 그리고 우리처럼 선진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추악한지를요. 하지만 그 사실을 얼마나 모르고 사는지를요. 현재의 풍요를 유지하기 위해서 우리가 얼마나 우리의 추악함을 '전가(다른 곳으로 떠넘기기)'하면서 사는지를요.

 

기후변화 공부를 하면서 기독교에서 말하는 '전가(impartation)'의 교리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죄를 주님께 전가하고, 주님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칭의 교리가 결국 자본주의 체제 아래서 자행되고 있는 전가의 논리(외부화/부정적인 것을 안 보이는 곳으로 떠 넘기기)를 정당화시켜주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생각 말입니다.

 

"자본주의는 내부의 모순을 다른 곳으로 전가하여 보이지 않게 한다. 그 전가로 인해 모순이 더욱 심각해지는 참상이 필연적으로 일어난다"(지속불가능 자본주의, 41쪽).

 

우리가 맞닥뜨린 기후변화의 위기는 자본주의의 전가 행태가 만들어낸 참상입니다. 우리가 맞닥뜨린 교회의 위기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죄의 전가'가 결국 교회의 참상을 만들어 낸 것 아니겠는가 말이죠. 자신의 모순을 자꾸 다른 곳으로 전가하여 자신의 모순을 결국 스스로 보지도 못하고 누군가에게 보이지도 않아서 결국 무너지게 되는 참상.

 

아무튼, 우리는 모든 것을 뒤집어 보아야만 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앞에 놓여 있는 것은 '멸망' 뿐이기 때문입니다. 기후변화를 공부하면서, 선지자 예레미야를 많이 떠올리게 됩니다. 그 당시 남유다가 그냥 가면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뿐이라는 사실(미래)을 안 예레미야는 온 힘을 다해서 외쳤습니다. 멸망의 길에서 돌아서 생명의 길로 나아가라고 말이죠.

 

그런데, 결국 남유다의 권세자들과 백성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생명의 길로 나아가라고 외치는 예레미야를 잡아서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려 했습니다. 그 결과는 참담했습니다.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바벨론으로 끌려 갔고, 수많은 고관들과 백성들이 결박당한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성전과 도시는 파괴되었고,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지도 상에서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기후변화에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며 행동을 촉구하는 이유는 우리가 사랑하는 것을 지켜내기 위해서 입니다. 삶의 자리가 사라졌는데, 어떻게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던 일들을 지속적으로 할 수 있겠습니다. 멸망한 자에게 무슨 예배가 필요하며, 사랑이 필요합니까. 산 자의 하나님이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지 않습니까. 더 이상 '전가'하는 체제와 신앙은 참상을 막을 수 없습니다. 전가하지 말고,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다. 남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바라지 말고, 바로 지금 내가 감당해야 합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