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란 언어를 포기하지 않는 것]

 

ㅡ 언어는 어수룩한 은총이다. 언어가 없었다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늑대"(홉스)인 아수라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했겠지만, 때로 그 언어는 너무도 무력해서 우리 안의 늑대가 무시로 눈 뜨는 것을 막아내지 못한다. 무력하기 때문에, 그것은 안간힘으로 지켜내야 하는 우리의 존엄이다. 민주주의의 운명이 그와 다르지 않다. "민주주의는 최악의 제도이지만 문제는 그 어느 것도 그보다 낫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말한 것은 윈스턴 처칠이다.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언어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언어를 포기하고 힘에 의존하는 순간 우리는 늑대가 되고 민주주의는 물 건너간다.

(신형철, <느낌의 공동체>, 240쪽)

 

민주주의와 언어의 관계를 명확하게 풀어낸 문장이다. 언어는 인간에게 신적 능력이다. 하지만 인간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인간의 언어는 좀 어수룩하다. 하이데거가 말했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인간세계에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어' 안에서만 살 수 있다. 언어가 입혀지지 않으면 인식 불가능하다. 그래서 김춘수도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인간 존재는 언어만큼 불안하고 어수룩하다. 인간 존재는 언어만큼만 평안을 누리고 지혜로워질 수 있다. 민주주의란 언어를 포기하지 않는 것, 이라는 말은 언어를 포기하고 그 대신 다른 것을 통해 존재를 증명하고 관계를 맺으려는 사악한 무리들에게 선포되어야 하는 복음 같은 말이다.

 

"말(언어)로 합시다!" 언어를 포기하고 총칼을 들려 하는 자는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를 포기하는 일은 최소한의 인간의 존엄성마저 내팽개치는 것이다. 인간에게 언어가 얼마나 중요하면, "태초에 하나님이 '말씀(언어)'으로 세상을 창조했다"고 성경이 선포하겠는가.

 

언어를 거두고, 자꾸 '힘'을 사용하려는 자들이 높은 자리에 앉으면 존재는 어쩔 수 없이 위험해지는 것 같다. 우리는 시방, 위험한 시대를 살고 있다.

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