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와 세속화]

 

"그람시가 말하는 세속화란 모든 사회관계를 교회로부터 분리시켜 새로이 조직하는 것을 말한다. 여기서 교회가 기존의 모든 지적, 도덕적 관계, 즉 지배계급이 축적/유지해온 사회관계의 총체를 나타낸다는 사실은 말할 필요도 없다."

(김항, <종말론 사무소> 16쪽)

 

그람시의 문제의식을 통해서 보듯, 서구사회에서 교회는 "지배계급이 축적/유지해온 사회관계의 총체"였다. 요즘 우리가 자주 하는 말로 옮기면, 서구사회에서 교회는 '적폐' 그 자체였다. 우리는 '세속화'라고 하는 말을 별로 좋은 의미로 받아들이지 못하지만, 서구사회에서 '세속화'란 적폐 청산을 위한 몸부림을 담고 있는 말이다.

 

서구의 세속화 논쟁은 나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한다. 동시에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기도 한다. 한국의 근대화는 '서구화'의 다름 아니다. 한국의 근대화는 서구문명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문명의 총아는 뭐니뭐니 해도 종교이다. 기독교는 서구 문명의 총아다. 한국이 기독교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그만큼 서구문명을 깊숙이 받아들였다는 뜻이다.

 

서구사회에서 기독교의 위상과 위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위에서 보았듯이, 교회는 "기본의 모든 지적, 도덕적 관계, 즉 지배계급이 축적/유지해온 사회관계의 총체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AD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서 기독교가 공인이 된 이후, 서구사회에서 기독교는 지배계급의 위상와 위력을 누리며 발전해 왔다.

 

종교만큼 지배체제를 공고히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종교는 지배체제를 성화시키는 역할을 감당하기 때문에, 지배체제를 축복하는 순간,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듯, 떡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되듯, 그 지배체제는 신성화된다. 이는 지배세력이 종교를 등에 업으려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의 대형교회 목사들과 몇몇 교단의 수장들은 새로이 대통령이 당선되면 '당선 감사예배'를 드린다. 보수 기독교 세력은 언제나 정부(특별히 보수 정부)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다. 특별히 요즘 이슈가 되고 있는 기독교의 뉴라이트 세력은 보수 정부가 들어선 요즘 대놓고 보수 정권을 지지하며 정부가 보수 정책을 펼치고 역사를 왜곡하는 일에 발벗고 나서고 있다. 이는 그람시의 통찰에서 보듯, 한국 기독교가 스스로 적폐 세력이라는 것을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건이다.

 

신영복은 <담론>에서 이런 말을 했다. "1623년 인조반정 이후로 노론 세력들은 지금까지 지배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습니다. 조선 후기, 일제강점기, 그리고 해방 이후 군사정권에 이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막강한 보수 구조를 완성해 놓고 있습니다. 물론 배후에 외세의 압도적 지원을 업고 있는 것 역시 그때와 다르지 않습니다"(392-393쪽).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보수당 국민의 힘은 노론에 잇대어 있다. 다른 말로 표현해, 한국에서 보수세력/지배세력의 역사는 500년이나 된 것이다. 이 500년 간의 지배세력 역사에서 한국의 기독교는 어떠한 역할을 한 것일까? 당선 축하 예배와 뉴라이트 세력의 득세를 통해서 한국 (보수) 기독교의 역할은 명확해진다. 한국 (보수) 기독교는 지배체제를 신성화시키는 일을 자행하고 있는 것이다. 다른 말로, 한국의 (보수) 기독교는 길지 않는 역사에서 서구 기독교의 악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한 마디로, 한국 (보수) 기독교는 한국 사회의 적폐가 된 것이다.

 

이것은 복음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현상이다. 복음은 국가와 종교 체제에 대한 저항이다. 국가와 종교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인간의 삶을 지배하는 힘이 크기 때문이다. 힘이 잘못 쓰이면 국민은 고통받을 수밖에 없다. 힘이 올바로 쓰이도록 하기 위해서는 신랄한 비판이 필요하다. 복음은 강력한 저항의 목소리이다. 복음 들고 산을 넘는 자들의 발걸음은 가볍지 않다.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무겁다. 고단한 길을 걷는 이들이게 주님의 위로와 평안이 임하길 두 손 모아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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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