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2013. 6. 17. 14:10

나그네와 나룻배

 

구름에 달 가듯이 가던 나그네가

강 마루에서 나룻배를 만났다.

 

나를 좀 저기 강 건너편까지 데려다 다오.

 

이 강은 왜 건너려고 하시나요?

 

글쎄, 나를 잊기 위해서

 

지금까지 당신은 자신을 찾기 위해 나그네로 살지 않았나요?

 

그랬지그런데 저 강 건너편에서 또 다른 나를 찾기 위해서는

나를 먼저 잊어야 하지 않을까 싶네만.

 

그렇군요. 그러나 우선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이 강을 건너기 위해서는 저랑 친해지셔야 해요.

 

어떻게 해야 자네와 친해질 수 있나?

 

그건 당신에게 달렸지요.

 

그날부터 나그네는 나룻배와 친해지기 위해서

나룻배와 시간을 많이 보냈다.

 

, 여름, 가을, 겨울,

관계를 만들어 내는 의미 없는 시간들을 보내고,

관계에 의미가 생길 때쯤

나룻배는 나그네에게 등을 내밀었다

 

출렁이는 강물을 가로지르며

나룻배와 나그네는 서로 머뭇거렸다.

 

나룻배는 강물에 눈물을 씻어내며 나그네에게 물었다.

 

당신은 나를 버릴 작정이신가요?

 

그게 무슨 소리지?

 

강을 건너고 난 뒤 당신은 당신의 길을 갈 테니까.

강을 건넜는데, 더 이상 내가 필요하진 않겠죠.

 

……

 

어쩌실 셈인가요?

 

나그네는 강을 건너는 동안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나룻배는 반대편 강 마루에 도착했다.

 

강물은 출렁였다. 나룻배의 마음도 출렁였다.

나룻배의 출렁임은 강물의 출렁임 때문인지

마음의 출렁임 때문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그 출렁임 가운데 아무 말 없이 한 참 서있던 나그네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괴나리 봇짐을 메고

뭍을 향해 두 발을 내디뎠다.

그리고 나룻배를 향해 말했다.

 

고맙네. 나를 잊으시게나.

나도 저 강을 건너오면서 나를 잊었다네.

나도 잊은 나의 모습을 자네가 간직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나.

다만 나는 자네의 그 출렁임만은 간직해 두겠네.

 

나그네는 떠나고

나룻배는 홀로 남아 강물의 흔들림에 몸을 맡겼다.

기억한들 소용 없으므로.

나그네와 나룻배를 이어주는 것은 출렁임 밖에는 없으므로.

 

그렇게 나그네는 자신을 찾기 위해 출렁였고

그렇게 나룻배는 간직하기 위해 출렁였다.

 

강 마루에 가 보라.

그러면 나룻배가 왜 출렁이는지

이제는 알게 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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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장준식